" 경찰학교 근무로 바뀌고 나서 일상적으로 검도를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만 , 스부리와 우치코미 케이코 , 이것을 철저히 했습니다. 작은 발 놀림으로 체세를 만들고 , 허리를 넣어서 끝까지 친다. 좋은 케이코가 되었다고 , 지금도 생각합니다." 40세로 선수생활을 은퇴한 에구치 교사는 , 그 후 경찰현장 근무를 거쳐 헤이세이 8년에 경찰학교의 교관이 되었다. ( 경찰학교 근무로 바뀌기 까지의 6년간 검도의 케이코는 생각처럼 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46세가 되어 8단심사자격이 되었을때도 케이코 부족은 명확 했습니다. 수심受審이란 도저히 가능한 상태가 아니었습니다.) 케이코가 충분치 않다. 하물며 8단 수심 , 에구치 교사는 8단이라는 단위의 무게를 알았기 때문에 도전을 미루었던 것일까 ... ( ..
" 파리대회에서는 , 여러가지 形과 케이코법을 제시 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강한 인상을 안겨줄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검도를 추구하는 사람 , 혹은 검도에 흥미를 가진 사람이 , 언젠가 , 그것들을 추구해 가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1998년 3월 , 제 1회 파리대회가 개최되었다. 대회창설의 경위에는 (......쿄토대회와 같이 武道로서의 검도를 원류에서 부터 바라보고 , 이해하고 , 상호 연구해 가는 장場을 만든다 ) 라고 있다. 지금의 쿄토대회에 그러한 힘이 있다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 그것은 별도로 하고 , 현대검도의 원점을 파헤치자는 것을 주안으로 한 대회라고 말 할수 있을 것이다. ( 요는 ` 뿌리 ` 를 확실히 인식하자 , 거기에 문화文化가 있다 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 `뿌리` 란 ..
" 기공氣功 강습회에 참가하게 되고 나서 3년째가 될 때 쯤 이었습니다만 , 검도에 있어서의 氣의 움직임을 조금씩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예를 들면 氣의 흐름의 두터운 벽과 얇은 벽 이라든가 , 氣를 낼수 있는 체질 만들기 등 입니다. 자신의 검도가 바뀌어 간다고 느꼈습니다." 心 , 氣 이것이 요시무라 교사의 마음속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되고 나서 얼마 후 , 친구로 부터 일본의 氣功선생님이 파리에서 강습회를 연다는 것을 듣고 , 요시무라 교사도 참가하게 되었다. ( 본래 외과 의사였던 그 선생님은 카라테의 고단자로 , 어느날 , 서양의학의 한계를 느끼고 동양의학과 기공 나아가 태극권등을 연구하고 , 그것을 바탕으로 독자적인 기공법을 개발해서 치료에 응용하고 있다는 것 이었습니다. 해설은 하나 하나가 ..
" 8단 수심의 레벨정도가 되면 , 그렇게 간단히 칠 수있는 기회를 만들어 주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상대에게 움직여 지지 말것 , 카마에를 무너뜨리지 말것 , 이것을 저 자신의 과제로 삼고 있습니다." 7단심사 , 요시무라 교사는 여기서 제자리 걸음을 하고 말았다. 5회 실패 했다고 한다. ( 좀처럼 합격에 이르지 못했습니다만 , 시간이 걸린 만큼 고 단위의 검도로서 소중한 것들을 배웠다고 생각합니다. 1회째의 도전에서는 몸을 무너뜨려서는 안된다 라는 것 , 4회째 , 5회째 때는 타돌의 질을 높이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 , 그러한 것들을 통감 했습니다. 자세히 말씀 드리면 , 이러한 것 입니다. 1회째 때 , 저 나름대로 꽤 쳤다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러나 게시판에는 저의 번호는 없다. 그 뿐인가 , 마주..
" 프랑스 주재는 , 보통 생각 하자면 케이코 환경에 좋은 조건이 아니다 라고 할 수 있지만 , 저에게는 그 반대 였습니다. 강사 선생님들은 일본에 있으면 어지간 해서는 케이코를 받을 기회가 없는 분들 입니다. 그 선생님들에게 집중적으로 지도를 받을 수 있게 되었으니까 ......" 대학 3학년 겨울 , 전검련 파견 학생지도원으로 프랑스로 간 요시무라 교사는 예정이던 1년을 2년으로 연장하고 , 다시 1년이 지날때 쯤 , 프랑스에 정착 하기로 결심했다. ( 계기 입니까 ? 하나는 정직에 취직한 것과 , 하나 더는 검도가 하나의 분과로 공인 되어진 것 일까요 .......) 분과 ...? ( 네 , 그렇습니다. 당시 프랑스 무도연맹에는 , 유도 , 카라테 , 프렌치 복싱 , 합기도 분과가 있었고 , 그것들..
" 도장에서는 저는 관장으로서 앞에 서게 됩니다만 , 혼자만의 케이코가 되지 않도록 주의 하고 있습니다. 확실히 서로 카마에 한 후 상대하고 , 상대의 기분이 충실해 지는 것을 보고 서로 힘을 내어 맞추는 , 그런 케이코 입니다. 어른 , 아이 구분은 하지 않습니다." 이 17년간 타키자와 교사는 사제관思齊館 타키자와 도장의 2대째의 관장으로 , 아이들과 일반 회원의 지도를 맡아 왔다. 처음에는 무아몽중無我夢中 이었다고 한다. ( 검도를 통해서 武의 문화와 德을 가르치고 싶다 , 그런 취지에서 아버지는 이 도장을 만들었습니다만 , 저에게는 높고 뛰어난 것 이어서 부담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 지금은 그러한 것은 없습니다. 요는 검도의 좋은점과 멋진점을 전하는 것이 그 단서이고 , 막히고 안되는 부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