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명의 주인 無名の主 , 무명의 신하 無名の臣 그것보다도 , 이 주인은 누구고 , 여기에서의 주인은 누구누구 , 이름을 거론하거나 하는 일 없이 , 그저 주인 , 주인이라고 생각하고 , 주인主人에게의 의義를 생각하는 것 입니다. 그리하면 가령 한 달 동안에도 , 혹은 일년 아니면 십년 간 이라고 해도 그 주인으로 부터 급료를 받고 있는 동안에는 , 이것이 나의 주인이다 라고 , 확실 히 생각하고 , 앞에 나서려고 하지 말고 , 또한 그림자도 밟지않도록 마음을 삼가하고 , 마음을 배려하여 봉공 하면 , 몇 번을 다른 집에서 일하더라도 , 주인은 한 사람 같은 것이 되는 것 입니다. 또한 주인 쪽에서도 , 아래 사람을 바꾸어 쓰더라도 , 부하를 부하로써 사랑하고 아껴주며 , 신참이든 고참이든 나누어 구분치 ..
주군의 길 신하의 길 主君の道 , 臣の道 옛날에는 「현명하고 뛰어난 부하는 , 두 명의 주군主君을 섬기지는 않는 법이다」등 이라고 해서 , 두 명의 주 군을 가지지 않는 것이 부하로서의 당연한 것으로 여겨져 왔습니다. 그렇지만 , 그로 부터 긴 세월이 지나 이쪽 저쪽 에서 주군을 모시고 , 결국 , 지나가다 온 철새 같은 사람들이 , 오히려 그것을 자랑이나 하듯이 말하는 시 절이 되었습니다. 주군의 입장에서도 , 아무래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라고 말하고 , 자신의 집에서 내 몰고 , 부하에게 수치심을 안 겨주거나 하는 지경이니 , 군신君臣의 도道 , 주종主從의 도道도 없어져 버린 것 입니다. 아래 사람으로서 주군을 가진 이者는 , 가령 여러 집에서 몇 차례 봉공했다고 해도 , 어떠한 때라도 , 주군은 이..
특정의 신神만을 믿어서는 신神의 도道는 서지 않는다. 特定の神だけ信じては神の道は立たない 우선 신神에게는 유명한 신과 그다지 유명하지 않은 신이 있습니다. 스미요시 , 타마츠시마 , 키타노 , 히라노 의 신들은 유명한 신 입니다. 그저 `카미사마神樣` 라고 만 부르는 것은 , 이름이 알려져 있지 않은 신 입니다. 카미사마를 숭배하고 공경하고 있다고 말 할 때에는 스미요시 라든가 , 타마츠 시마 라든가 , 히라노 , 키타노 등 이라고 특별히 이름을 열거 하거나 하지 않고 , 어디의 어떠한 신神이라도 공경하고 숭배하는 것 입니다. 그런데 `키타노`의 신을 믿고 있습니다 하고 말 할때는 , `히라노` 신은 뒷전 입니다. 히라노 신을 믿고 있다고 말 할 때는 , 키타노 신은 어찌되도 좋다는 식 입니다. 하나의 신..
욕欲의 힘을 빌어 무욕無欲의 의義를 행한다 欲の力をかりて無欲の義を行う 그러니 이 욕欲을 빌리지 않는 것은 , 선善이든 악惡이든 , 어떠한 행동도 취하지 않는 것 입니다. 사람에 강에 빠져 있는것을 보고 , 자 , 끌어 올리자 라고 생각하는 마음은 있어도 , 손手이 없다면 끌어 올리는 것은 불가능 합니다. 그와 반대로 , 사람을 깊은 골짜기로 떨어뜨려 주자는 마음이 있어도 , 손이 없다면 밀어 떨 어뜨리는 것은 역시 불가능 한 일 입니다. 이와 같이 어떠한 일이 있어도 , 잘 되느냐 못 되느냐가 오직 그 손手의 움직임대로 라고 만 한다면 , 일이 성사 되든 혹은 실패하든 길道을 그르치게 되는 것 입니다. 그래서 뭔가를 하려고 할 때도 욕欲의 힘을 빌리게 되는 것 입니다만 , 중심中心의 , 올 곧은 마음이 ..
의지意志는 욕欲에의해 태어난다 意志は欲によって生まれる 이렇게 말해도 마음의 수행을 깊이있게 쌓아온 사람이 아니면 , 예를 들어 백일百日간 설교하고 , 백일百日간 들 었다 할 지라도 , 아무리해도 마음의 근저根底로 부터 납득하기는 어려운 법 입니다. 그렇지만 우리들이 이렇게 말하는 것에 대해서 , 아니 , 그럴리는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 유학儒學을 강의하 는 사람 , 그것을 열심히 듣고 있는 사람의 행동과 마음 속을 보면 잘 알 것 입니다. 불교佛敎의 가르침을 설파하는 사람 , 듣는 사람도 같습니다. 이것은 단지 유교의 험담을 하거나 , 물리치려고 말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진정한 수행을 쌓고 , 도달해야 할 곳에 도달한 사람이 아니면 , 제아무리 웅변을 떨치고 분명하게 설명 한다고 해도 , 결코..
참된 마음과 배려하는 마음 まごころと思いやりの心 이 구석에서 저 구석까지 욕欲으로 뒤덮혀 있는 우리들의 신체 속에 , 오로지 무욕無欲으로 정직한 중심中心이 숨어 있습니다. 이 마음은 육체肉體 , 감각感覺 , 원망願望 , 마음의 작용 , 의식意識과는 별개로 , 색色과 형태形 도 없고 , 하물며 욕欲과는 관계없이 존재하는 , 중정中正으로 , 곧고 바른 것 입니다. 이 마음을 기준으로 삼아 모든 일을 행하는 경우 , 행하는 모든 것이 의義에 합당 한 것 입니다. 이 중정中正한 , 곧 바른 것이야 말로 , 의義의 본체 , 의義의 본질 인 것 입니다. 의義라고 하는 것은 표면에 나타난 행동에 대해 부여한 임시적인 이름 입니다. 인仁이라고 하는 것도 , 역시 이 중정中正으로 해서 곧 바른 , 색도 형태도 없는 것 ..
욕심으로 부터 우리들의 몸과 마음은 태어났다. 欲から我々の心身は生まれた 우리들의 몸과 마음을 자세히 보자면 , 색色 , 수受 , 상想 , 행行 , 식識 의 다섯가지가 응축된 결과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색色이라고 하는 것은 , 우리들의 이 육체 그 자체를 말 합니다. 수受란 , 이 육체가 받고受 , 느끼고感 선善한가 악惡한가 , 바른가正바르지 않은가 , 슬픔悲인가 기쁨歡인가 , 괴로움苦인가 즐거움樂인가 등의 감각을 말 합니 다. 생각想 이라는 것은 바라고 원하는願望 것 입니다. 악을 싫어하고 선을 바라고 슬픔을 물리치고 기쁨을 원 하며 , 괴로움을 제거하고 즐거움을 바란다 , 그 생각이 상想인 것 입니다. 행行이란 , 좀 전의 수受와 상想을 자기자신이 행行하는 것을 의미 합니다. 괴로운 것을 싫어해서..
사람은 욕심의 덩어리 人は欲のかたまり 욕심欲이라고 말 합니다만 , 이것은 그저 함부로 재산을 욕심내는 것이나 ,금은보화를 모으고 싶어하는 것 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눈目이 물건을 보는 것도 욕欲에 의한 것 입니다. 귀耳가 소리를 듣는 것도 욕심에 의해서 듣는 것 입니다. 鼻코 가 냄새를 맡는 것도 , 역시 욕심에 의한 것 입니다. 아주 조금 , 뭔가를 하려고 하는 생각이 싹트는 것도 , 욕심 이 있어서 입니다. 인간의 신체는 모두가 욕심의 덩어리 라고 말 할수 있습니다. 누구라도 , 욕심이 강한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 입 니다. 물론 욕심으로 굳어진 것 같은 인간의 신체 속에도 , 무욕無欲을 본질로 하는 부분도 포함되어져 있습니 다. 그렇지만 항상 , 강하고 거센 욕심의 그늘에 숨겨져 , 표면으로..
너무나도 의義를 모르는 사람 あまりにも義を知らぬ人 *정영程嬰이나 저구杵臼는 두 사람 모두 의義를 위해서 죽었습니다. 백이伯夷 숙제叔斉의 형제도 , 신하인 자 가 주군을 죽여서는 안된다고 간언 한 것도 , 의義를 생각했던 사람들 이었기 때문 입니다. 그들이 수양산에서 굶어 죽은 것도 , 그러한 이유에서 입니다. 의義를 위해서 죽은 사람은 , 이렇게 보자면 예로부터 결코 많지는 않았습니다. 하물며 현재와 같이 무도無道가 활개치는 시대에는 , 욕심과 생명을 가볍게 여기고 , 의를 중시하는 사람이 있을 리가 없습니다. 누구나가 모두 욕심을 위해서 생명을 버리고 , 혹은 목숨이 아까운 나머지 수치를 당하면서 긴 목숨을 이어가는 것 입니다. 이들 모두가 의義라고 하는 것을 전혀 모르는 것 입니다. 그러한데 사람들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