② 천지가 변동해도 그 마음을 빼앗기는 일이 없고 , 만물이 뒤집혀 덮쳐 오더라도 그 마음을 어지럽게 하는 것은 없고 무언가를 생각할 때도 집착하거나 정체하거나 하는 일은 없고 , 무언가를 행 할때도 누군가를 의지하는 일도 없다. 마음을 편안하게 지키고 기氣를 강하게 키우고 , 결연하게 서서 굽히는 일 없고 , 게을리 하는 일 없고 , 유연해서 다투는 일도 없고 , 타인에게 뭔가를 재촉하는 일도 없다고 하는 , 이 뜻志을 초학 무렵부터 세 워서 , 사람을 만나고 보고 들은 것을 잘 받아드려서 마음의 수행을 하는 , 그러한 인간으로서 살아가는 것이다. 도리道理에는 대소大小가 없다. 검술劍術의 구극究極의 원리도 또한 같은 것이다. 그러니까 그 무예심술 의 수행으로 얻은 것을 잘 내성시키고 , 그 심술을 일상..
① 다음과 같은 질문이 있었다. 어떻게 하면 무예심술이 도학道學의 도움이 되게 할 수 있는가. 다음과 같이 대답하고 말했다. 마음에는 성性과 정情(마음의 작용)이 있을 뿐이다. 성性은 마음의 본체의 천리 天理(마음의 본체에 본래 갖추어진 자연의 도리)이고 , 조용하고 움직이지 않고 , 색도 없고 형도 없다. 정情의 움직임에 의해 , 바 른 것과 간사한 것 , 선과 악의 차이가 생기는 것이다. 정情의 변화에 의해 일어나는 마음의 본체의 그 신 비한 작용을 보고 , 천리天理와 인욕人欲이 나누어지는 부분을 아는 것이다. 이것을 학술學術 이라고 한 다. 그러면 그 나누어지는 부분을 아는 것은 ,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원래가 인간의 마음 속에는 본래 뛰어난 판단력이 갖추어져 있어서 , 기만하는 것도 속이는 것도..
지금 시대는 기술技에 습숙習熟하고 , 기氣가 화和하고 , 승부에 이기는 것을 시험하고 지는 것을 의심하는 것도 없어지고 , 미혹되는 일도 없고 , 정신이 안정해서 자유자재가 된 사람들은 많다.그 빼어난 움직임은 귀신과도 같다고는 해도 , 그래도 아직 의지하는 것(기술)이 있는 상태로 부터 빠져나오지는 못한 점에서는 , 사공이 배의 선단을 달리고 , 기와 장인이 천수각에 올라서 기와를 까는 경우와 같은 것이다. 이것을 병법에 있어서의 상수上手라고 한다.
모두가 한 가지 예藝(재주)에 있어서 달인이 된 사람은 항상 마음을 이용하고 있기 때문에 , 도리 道理에 밝은 법이다.그럼에도 , 그 한 가지 예藝의 것 만을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 그것이 한 가지 예 하나 만을 소중히 하는 사심私心이 되어 , 도道의 학문에는 들어가기 어려운 것이다. 어쩌다가 학문을 즐기는 사람이 있다고 해도 , 한 가지 예 만을 주로 하고 , 도의 학문을 그 다음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 어쩌다가 듣게 된 깊은 도리道理도 모두 한 가지 예를 위한 도움이 될 뿐이고 , 넓게 유용하게 쓰이지는 못한다. 하물며 심술心術의 도움이 되는 일 등은 있을 리도 없다.무예심술武藝心術을 수행하는 사람이 이 부분의 것을 자득自得하면 , 매일 수행하고 있는 무예심술이 자신의 마음을 도와서 마음에 본래 ..
그럼에도 코가 높고 , 부리가 있고 , 날개가 있어서 , 그 탓에 검술 이외의 것에서는 마음의 명쾌함을 가로막는 부분이 있어서 , 마음을 자유롭게 움직이는 것이 불가능한 사람이 , 처음부터 한 가지 검술에만 뜻을 두고 , 마음을 수양하고 , 기氣를 단련한다 고 하는 사실이 여기에 있다. 검술 이외의 것에 대해서는 , 가령 병이나 몸의 통증으로 괴로운 것 조차 잊어버리고 , 또한 사물이 귀와 눈에 와 닿아도 눈을 떠서 보려고도 하지 않는다. 말할 것도 없이 , 그러한 사물에 마음을 두거나 하는 일은 없다. 따라서 , 검술을 수득修得해서 분명하게 되어도 , 그 분명하게 된 것을 넓게 받아들이고 다른 것에 응용하는 것이 불가능한 것이다.그것은 , 분명함이 미치는 범위가 한정이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등불을..
다음과 같은 질문이 있었다.그 구극의 원리에 대해서 나는 잘 알아 듣지 못한다. 바라건대 , 수행의 대략를 들려 주었으면 좋겠다.다음과 같이 대합하고 말했다.도리道理는 볼 수도 없고 , 들을 수도 없다. 보는 것이 가능하고 , 듣는 것이 가능한 것은 도리의 흔적 일따름 이다.그 흔적에 의지해서 , 보는 것도 , 듣는 것도 불가능 한 도리를 깨닫는 것이다. 이것을 자득自得 이라고 한다. 학문은 자득하지 않으면 도움이 되지 못한다. 검술劍術은 소예小藝에 지나지 않는다고 하지만 , 마음과 몸의 뛰어난 작용이고 , 그 구극 究極의 원리에 다다르면 도리에 일치하는 것이다. 나는 아직 그것을 자득하는 것에는 이르지 못했지만 , 조심스럽게 전해 들은 것이 있다. 그 들은 바를 당신에게 말하겠다. 오로지 잘 듣는 것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