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과 같은 질문이 있었다. *창槍에는 소창素槍 , 십문자창十文字槍 , 구창鉤槍, 관창管槍등이 전해 지고 있다. 어느 것이 더 유리 한 것인가 다음과 같이 대답하고 말했다. 이 얼마나 어리석은 질문인가. 창은 찌르기 위한 도구이다. 자유자재로 찌를 수 있게 되는 것은 자기자 신 인 것이고 , 창이라고 하는 도구의 문제가 아니다. 그럼에도 낫을 붙이거나 , 손잡이에 갈고리를 달 거나 , 손잡이에 관을 씌우거나 해서 창을 쓴다고 하는 것은 , 각각이 선인들이 습득한 것에 궁리 개선 을 더해서 , 그 도구의 기능을 극한까지 높이고 , 그와 같은 도구를 사용해서 자유자재로 찌를수 있게 되었다고 하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시대에 그 유의를 배우는 사람은 , 처음부터 그 도구를 사용해서 연습해 왔기 때문에 , 다른 ..
마음心은 명쾌하고 막히는 것이 없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이다. 기氣는 강건하고 굽히는 일이 없는 것 이 중요하다. 마음과 기는 원래가 하나 일체인 것이다. 이것을 굳이 나누어 표현하면 , 불과 장작과 같은 것이다. 불火에는 대소大小는 없다. 땔감이 부족하면 불의 기세는 왕성하게 되지 않는다. 장작이 습기가 있으면 불은 밝은 빛깔을 내지 않는다. 사람의 신체의 일체의 작용은 모두가 기氣가 장악하고 있다. 그러니까 기가 강건한 사람은 병이 발생 하지 않는다. 풍한서습風寒暑濕에도 고통을 느끼는 일이 없다. 기가 유약한 사람은 병도 발생하기 쉽 고 , 간사한 기에도 쉽게 느끼게 된다. 기가 병든때는 마음이 괴롭고 , 신체가 피곤하다. 의서醫書에도 모든 병은 기氣로 부터 발생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기가 변화하는 ..
다음과 같은 질문이 있었다. 검술은 마음과 몸을 교묘巧妙히 사용하기 위한 기술이다. 그러한데 , 어째서 비밀로 하는 것과 같은 일 이 있는 것인가. 다음과 같이 대답하고 말했다. 검술劍術의 원리는 천지자연天地自然의 원리 이다. 그러니까 내가 알고 있는 것에 대해서 다른 곳에 알 고 있는 사람이 없다고 하는 일은 있을 수 없다. 비밀로 하는 것은 초심자를 위한 것이다. 비밀로 하지 않으면 , 초심자는 아직 신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것은 검술을 가르치는 사람의 하나의 방편이다. 그 러니 비밀로 붙이는 것은 모두가 말단末端의 기술들이다. 극의極意를 비밀로 하지는 않는다. 초심자는 어떤 분별도 없이 되는대로 대강 듣고 , 오해하고 , 그것을 자신은 바르다고 믿고 타인에게 말 하거나 한다. 그와 같은 경우에는..
다음과 같은 질문이 있었다. 옛날 중국에도 검술의 전서는 있었던 것인가 다음과 같이 대답하고 말했다. 나는 아직까지 그러한 서적을 보지는 못했다. 일본에서도 중국에서도 옛날에는 기氣의 강강활달剛强闊 達을 주로 해서 생사를 고려하지 않고 , 힘에 따라서 격투格鬪 했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장자 莊子의 * 「검설편 剣説の篇」등을 보아도 모두가 그러하다. 단지* 「달생 편 達生の篇」에 「투계를 키운다 闘鶏を 養う」의 논이 있어서 , 이것은 실로 검술의 구극의 원리이다. 그러나 장자는 검술을 위해서 이것을 논한 것이 아니다. 단지 기를 양성하는 단계가 아직 중간인지 성숙했는 지를 논한 것 뿐이다. 그러나 진리는 하나 이다. 도道의 구극究極에 도달한 사람의 말은 모든 일에 통하는 법이다. 마음을 먹으면 , 모든것이..
다음과 같은 질문이 있었다. 불교의 승려가 의意와 식識을 미워하고 , 그것으로 부터 멀어지는 것은 어째서 인가 다음과 같이 대답하고 말했다. 불교의 궁리에 대해서는 , 나는 잘 모른다. 의意와 식識이란 원래가 지혜를 움직이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다. 미워해야 할 것이 아니다. 단지 정욕을 도와서 마음의 본체를 벗어나 , 오로지 자신의 이익 만을 위해서 움직이는 것을 미워하는 것 뿐이다. 의意와 식識은 사졸士卒과 같은 것이다. 장군이 어딘가에 사로잡혀서 눈앞이 어지럽고 , 어리석고 약하 고 힘이 없는 경우는 , 사졸은 장군의 명령에 따르지 않고 , 자신의 이익 만을 생각하고 자신의 모략을 이용해서 자기 마음이 내키는 대로 움직이고 , 부대는 하나로 모아지지 않고 , 망동해서 대열이 흩어지 고 , 결국엔 패전..
다음과 같은 질문이 있었다. 마음의 본체에는 형도 색도 소리도 냄새도 없다. 마음의 절묘한 작용은 신의 한 수 이고 , 헤아려서 알 수가 없다. 대체 어떻게 해서 마음의 수양을 쌓아가면 좋을 것인가 다음과 같이 대답하고 말했다. 마음의 본체를 말로써 표현하는 것은 불가능 하다. 그것은 단지 희노애락 등 일곱 종류의 감정이 움직 이는 곳이고 , 또한 사념思念이 인식작용을 하는 곳이기도 하고 , 사람이 사물에 대응하는 상황에서 그것들의 감정이나 사념의 작용에 과부족이 없도록 억제하고 , 사념私念의 망동을 배제하고 , 거기에 본래 갖추어진 자연의 법칙에 따르게 한다 라고 하는 움직임을 하는 기관器官이라고 말 할 수 있을 뿐 이다. 마음의 수양을 위해서 착수 해야 할 것은 양지良知의 발견이다. 그러면 무엇을 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