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 타류에서 발 놀림이 있는 것 발을 딛는 방법은 「뜨는 발」 , 「나는 발」 , 「도약하는 발 」, 「겹쳐밟은 발」 , 「까마귀 발」 이라고 해서 여러가지 빠른 발로 나아가는 것이 있다. 이것은 모두 나의 병법에서 볼때는 불충분하게 여기는 것들 이다. 「뜨는 발浮き足」을 싫어하는 것은 , 그 이유는 싸움이 되어서는 반드시 발이 뜨고 올라가는 법이니까 , 가능한한 확실히 딛는 방법으로 한다. 또한 , 「나는 발飛び足」을 즐기지 않는것은 , 나는 발은 , 나는것을 시작하는 느낌이 , 날아서 내려앉는 느낌이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날아도 이어서 날 수는 없기 때문에 , 나는 발은 나쁘다. 또한 「도약하는 발跳ね足」 , 도약한다는 느낌에서는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법이다. 「겹쳐서 내딛는 발踏み重ね足」 ,..
시선에 대해서는 「水의 卷 」에서도 논했지만 , 싸움에 있어서는 전면경계체제에 있기때문에 원래부터 , 어딘가 한 곳에 눈을 두고 있으면 괜찮다 라는 등은 있을 수 없다. 요점은 시선을 두는 것 보다는 손에 익숙해 있는 쪽이 중요하다 라는 것이다. 손에 익숙하면 시선은 고정하지 않아도 보여지게 된다. 적은 한곳 만을 움직이는 것으로 양동을 걸어올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것이 그렇게 보이게 하기 위해 서의 양동작전이라면 , 그 한 곳을 제아무리 쳐다보아도 , 그것이 가짜인지 진짜인지는 결코 알 수가 없다. 그것을 간파하는 것은 , 남아 있는 전체의 움직임을 보는 것에 의해서 이다. 그것이 전체의 조화 에서 빠진 부분이 있다면 , 진짜의 움직임은 아니다. 전체의 조화가 있다면 , 설령 적 자신이 우선은 양 동의..
6 . 타류에서 「目付け시선」를 논하는 것 시선이라고 해서 유파에 따라 적의 태도太刀에 시선을 두는 것도 있고 , 혹은 손에 시선을 두는 것도 있다. 혹은 얼굴에 시선을 두고 , 혹은 발등에 시선을 두기도 한다. 그와같이 특별히 시선을 두고자 하 면 혼란스러운 느낌이 되어 , 「병법의 병病」 이라는 것이 되어버리는 것일 것이다. 그 이유는 , 털실 공 을 차는 사람은 공에 주의깊게 시선을 두지 않더라도 , 몸의 흐름으로 차고 , 공을 쫓으며 차고 , 돌아 다니면서 차고 , 사물에 익숙해 지는 상황에 있다면 확실히 눈으로 볼 것도 없다. 또한 , 곡예등을 하는 사람의 기술에 있어서도 그 길에 익숙해서는 , 문짝을 코에 세우고 , 칼을 몇개나 손에 올리고 가지고 놀고 , 이것은 모두가 , 확실히 시선을 둔다..
5 . 타류에서 태도太刀의 카마에를 중시하는 것 태도의 카마에를 제 일로 여기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세상에서 카마에가 있는 것은 , 적이 없는 때의 것일 것이다. 그 이유는 예로부터의 상례常例라든가 현대의 규범 등으로 해서 , 상례규범을 세우는 것 은 승부의 도道에 있어서는 있을 수 없는 일 이기 때문이다. 그 상대가 곤란해 할것 같은 것을 궁리하는 것이다. 무슨일이든 `카마에` 라고 하는 것은 , 허락치 않는 것을 중시하는 마음心이다. 혹은 성城을 카마에 하 고 진陣을 카마에하고 한다는 것은 , 사람들에게 싸움이 걸려와도 강하게 움직이지 않는 마음 , 이것은 통상의 것이다. 병법승부의 도道에 있어서는 , 무슨일이든 선수先手선수先手로 마음을 먹게 된다. 카 마에 한다는 마음은 , 선수先手를 기다리는 마..
4 . 타류에서 태도太刀의 기술이 많은것 태도太刀의 기술을 많이해서 사람들에게 전하는 것은 도道를 파는 물건으로 바꾸어 , 태도기술을 많이 알고있다고 초심자인 이들에게 깊이 생각하게끔 하기위함에 지나지 않는다. 병법에서는 싫어하는 마음이다. 그 이유는 사람을 베는 것에 여러가지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 헤매 는 마음이기 때문이다. 세상에 있어서 사람을 베는 것에 특이한 방법따위는 없다. 검술을 아는 사람도 알지 못하는 사람도 , 여자도 아이도 , 치고 때려서 자른다는 방법은 많지 않은 법이다. 혹 다르다고 해 도 찌른다 , 벤다 라는 것 외는 없다. 우선 자른다切고 할때의 방법에 있어서는 많은 기술이 있을 수가 없다. 그래도 장소에 따라 , 일에 따라서 , 위나 옆이 막혀있는 곳에서는 태도를 쓸수 없도..
이와같이 짧은 태도太刀를 선호하는 것은 거합居合을 하는 이들 중에 많고 , 사사키코지로의 스승이던 중조류中条流의 도다세이겐富田勢源은 불과 1척尺5촌寸(약 45cm)의 소도를 애용했다. 그 장점은 여기 에 기록된 바와같이 그 기동성에 있다. 그러나 전학병법戰學兵法의 핵심은 , 어디까지나 움직이지 않고 움직이게 하는것에 있다면 , 기동성 따위는 원래부터 필요치 않다. 하물며 그 기동성이 말하는 것도 , 종 종 적의 틈이 생기는 것을 기다리는 후수後手이고 , 확실히 그 기동성으로 적의 사소한 틈이라도 뚫고 들어갈 수 있을 지는 모르나 , 그러나 대적大敵을 만나서는 조그마한 틈도 생기지 않는다면 , 한 수도 못쳐보고 베이는 대로 있어야 한다는 것인가 ... 선제를 첫째로 여기는 전학병법에 있어서는 틈이라는 것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