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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 八段の修行 신8단의수행

신 고단자의 수행 ......... 산노미야 카즈히로

" 70歲까지는 현재의 체력을 유지하고 , 지금까지 자신이 길러온 전부를 후진後進에게 전하고 싶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체력이 떨어져서는 정확하게 전달하는 것도 불가능 하다고 생각하기 때문 입니다. 이 후로 4년 , 어떻게든 될 것 같습니다."

 

일년 전 , 26년에 걸친 막을 내린 아이치愛知현 이누야마시犬山市 , 무성당無聲堂의 메이지 무라明治村 대회. 8단의 검사라면 누구라도 동경하는 대회 이다. 그 대회에 산노미야 교사는 헤이세이 7년(1995) 부터 4년 연속해서 출장하고 , 헤이세이 9년(1997)에는 3위입상을 이루었다. 다른 3회는 전부 베스트 8 이라는 좋은 성적 이었다. 참고로 , 대회 초창기에는 산노미야 교사의 스승인 카와자키 범사도 3회 출전해서 , 그중 1회는 3위에 들었다.

그런 메이지 무라 대회에 대해 산노미야 교사에게 물어 보았다.

( 대회전에 , 어떤 선생님이 ` 베스트 8에 들어가면 다음회의 출전 티켓을 틀림없이 받을 수 있을테니까 , 열심히 해보세요 ` 라는 격려를 받고 , ` 좋아 어떻게 해서든 베스트 8 이다 ! ` 라고 결심하고 임했습니다만 , 얼마 지나지 않아 틀렸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무엇보다 성적을 구求해서는 안된다. 이것을 분위기로 알수 있었고 , 대회 그 자체로도 알 수 있었습니다. 대회장인 무성당無聲堂은 듣던대로 좁은 도장으로 , 제대로 구획선등은 그어져 있지도 않았습니다. 그 만큼의 긴 전통을 느끼게 했고 어딘가 선연함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심판 선생님들 입니다. 전원이 문양이 새겨진 하카마를 입으시고 하얀 버선발 복장으로 , 손에는 깃발을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다. 판정은 두 손으로 , 게다가 태연하고 침착해서 서두르지 않는 다는 느낌으로 정말로 천천히 하고 계셨습니다. 진정한 한 칼을 치지 않으면 안됩니다 , 속이고 적당한  것은 안된다 , 라고 엄하게 말씀하시고 계신듯 했습니다. 엄청난 곳에 와 버렸다 , 저는 그렇게 생각 했습니다.)

필자는 이 대회를 몇 번인가 관전 했었다. 15번 16번은 봤을 것이다. 그런 만큼 산노미야 교사가 말하는 하나 하나를 잘 이해 할 수 있다.

( 대회장 이라고 되어있지만 , 이것은 틀림없는 수행修行의 장소라고 생각했습니다. 지금까지 저는 시합 , 시합으로 해 왔습니다. 그러나 ,그 시합과 여기에서의 시합은 아주 큰 차이가 있다. 시합에는 테크닉도 필요한데 , 그것이 통용될것 같은 대회가 아니다. 케이코로 키워왔던 것은 무엇인가 , 그렇게 저 자신에게 물어 보면서 , 그리고 그 자신과 진격眞擊으로 마주한 자신을 곧 바로 상대에게 가져가 부딪친다. 이 대회는 그것을 선수들에게 요구 하고 있다 , 그렇게 느꼈던 것 입니다.)

그것 이야말로 , 그 대회의 주된 취지일 것이다.

( 그런데 , 저 자신에게는 무엇이 있는 것일까 생각했습니다. 호흡을 의식하면서 간합間合에 들어가고 , 몸을 모아서 , 거기서 부터 오로지 머리만 치고 간다 , 이것 밖에는 없습니다. 결과는 베스트 8 이었습니다. 너무 과분 하다고 생각하면서도 , 지금의 케이코가 검도의 방향으로서 틀리지는 않았다 라는 큰 자신감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몸을 모으는 세메법을 이전 보다 더 열심히 연구하고 , 또한 체력강화에도 노력했던 것을 기억합니다.)

체력강화 ?

( 네 , 기본케이코나 카카리케이코를 특훈생들과 섞여서 했습니다. 이유는 단순 합니다. 젊은 그들과 함께 할수 있는 체력이 있다면 , 체력에 관해서는 동년배의 선생님들에게는 뒤지지 않을것 이라고 생각했던 것 입니다. 기술에서는 뒤쳐져도 , 체력에서는 지지 않아 , 라는 것 입니다. ^^  달리기도 가끔 했습니다. 결국 저는 그 대회에 의해 커 갔다는 것이지요)

처음에 이야기 나왔던 오카다 도장과 같은 것이 된다.

( 그렇습니다. 무성당無聲堂은 좁지만 큰 그릇器 이었습니다. 저는 지금 66살 입니다만 ,70까지는 어떻게든 체력을 유지하고 , 저 자신이 지금까지 가꾸고 키워온 전부를 후진에게 전하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70 이라고 선을 그은 것은 , 체력이 떨어지고 나서는 정확하게 전할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 입니다. 지금 있는 체력 ,이것은 메이지무라明治村 대회를 위해서 케이코를 해온 저축과 같습니다. 그러한 이유에서도 , 저에게는 그 대회는 실로 크나큰 것 이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