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에 마음을 머물게 할 때는 , 기氣도 거기에 정체해서 융화하지 않고 , 말단의 것들을 쫓아서 대본大
本의 것을 잊어버리는 것은 말 그대로이다. 그러나 기술을 일절 없애고 버리고서 , 수행하지 않아도 좋다
고 말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기技는 검술劍術의 작용作用이다. 그 작용을 버린다 捨면 , 본체의 원리
는 대체 무엇에 의해서 실현 될 수 있겠는가. 작용을 수련하는 것에 의해 본체를 깨달을 수 있고 , 본체를
깨달음으로 작용이 자재가 되는 것도 있는 것이다. 본체와 작용의 본원本源은 하나이고 , 미세한 간격도
없는 것이다.
원리原理는 어느 날 갑자기 깨달을 수 있어도 , 기술技은 습숙習熟하지 않으면 기氣가 굳어서 몸이 자재
로 움직이지 않게 된다.
기技는 원리原理에 의해 생겨난다. 형形이 없는 것은 형形이 있는 것의 주主인 이다.
그러니까 기氣를 가지고 기技술을 수련하고 , 마음心을 가지고 기氣를 수련하는 것이 사물의 순서인 것
이다. 그럼에도 , 기技에 습숙해서 기氣가 정돈되고 정신이 안정되는 일이 있다. 뱃사공이 노를 가지고
배의 선단을 뛰어가는 모습은 , 마치 큰 도로를 뛰어가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
고 그렇게 하고 있는 것이다. 그저 물에 습숙해 있고 , 물에 빠지더라도 죽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
문인 것이다. 그러니 정신이 안정되어 이와 같이 자재로 달릴 수 있는 것이다. 나무꾼이 무거운 땔감을
등에 지고 좁고 험한 산길을 이동하는 것도 , 기와 장인이 천수각의 지붕에 올라서 기와를 까는 것도 , 모
두가 그 기술에 습숙해서 의심하지 않고 두려워 하지 않기 때문에 , 비로소 정신이 안정해서 자재로 움직
일 수 있는 것이다.
검술도 또한 같은 것이다. 이 무예에 습숙해서 마음에 철저하고 , 기술을 시험해도 의심이 없고 두러움이
없는 경우에는 , 기氣가 생생하고 정신도 안정되어 , 기술의 변화응용에 어떠한 지장도 없고 자유자재 인
것이다.
여기까지는 기氣의 수련이기 때문에 자기스스로가 알고 있는 것 일 것이다. 자신을 가져도 당연 한 것이
다. 그러니까 말로 논 論한다면 좋을 것이다.
그러나 , 저 무심無心인 채로 자연히 응수하고 , 어떻게 움직인다 해도 형形이 생기지도 않지만 , 흔적도
남기지 않는다고 하는 잴 수도 없는 절묘한 솜씨의 경우 , 그 마음과 몸의 연휴連携(이어진 상호협력)에
대해서는 , 생각해서 납득이 가능한 것도 아니고 물어서 알 수 있는 것도 아니고 , 스승이 전해주는 것도
아니다. 자기 스스로가 수행의 공적을 쌓아 올려 자연히 얻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스승이란 그 이치를
전해주기 까지 인 것이다. 간단하게 논 할 수는 없다. 그렇기 때문에 세상에서도 보기드문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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