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다른 사람이 말했다.
칼은 베는 것이고 , 창은 찌르는 것이라고 말 한다 , 그것은 물론이다. 그러나 그것은 너무 이론적이고
기술의 작용을 모르는 것이다. 베는 대는 베는 기술이 있고 , 찌르는 대는 찌르는 기술이 있다. 기술의
작용을 모를 때는 바르게 응수 할 수 없다. 마음이 강剛하다 하더라도 , 몸이 그것에 따르지 못 할 때는
쳐서는 안 될 곳을 치거나 , 기술과 이치가 서로 맞지 않으면 도달해야 할 곳에 가 닿지 못한다.
당신이 말하고 있는 것과 같은 것은 , 말을 선별하고 있으나 정확하지 않고 , 여러가지로 설명하고 있으
나 상세하지는 않다고 할 것이다.
마음과 몸이 깨달음을 열었다고 해도 , 선승禪僧에게 정치를 하게 하거나 , 일군一軍의 대장으로서 적을
공격하게 하거나 해도 , 어떻게 공적을 올릴 수 있게 할 수 있는가. 그 마음에 번뇌와 망상이 축적되어 있
지 않다고 해도 , 실무에 습숙習熟해 있지 않으면 도움이 되지 못한다 할 것이다.
그리고 활을 당겨서 화살을 쏘는 것은 누구라도 알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궁도弓道의 바른 방법에
의하지 않고 , 기술에도 습숙하지 못한 채 , 마음대로 활시위를 당겨 활을 쏠 경우에는 , 화살이 과녁을
맞추고 딱딱한 과녁판을 뚫을 수는 없다. 반드시 활을 당기는 사람의 뜻志이 바르고 , 그 형形이 바르고 ,
기氣가 몸 전체에 가득해서 생생하게 활동하고 , 활의 본래의 성질에 반反하지 않고 , 활과 자신이 일체
가一體 되어 , 정신이 활을 당길 때에 천지天地에 확장되는 것 같이 과녁과의 거리에 넘치는 경우에는 ,
정신이 안정되고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아서 무심無心으로 활을 쏜다. 쏜 후에도 또한 본래의 그대로의
자신이다. 활이 과녁에 맞은 후에 조용히 활을 정리 한다. 이것도 또한 궁도의 예로 부터의 관습이다. 이
렇게 하면 활을 멀리 보낼 수 있고 단단한 과녁을 잘 관통 할 수 있다. 활과 화살은 목죽木竹으로 만들었
다 고 하지만 , 자신의 정신이 활과 화살과 한 몸이 될 때에는 , 마치 활에 신神이 머무는 것 처럼 , 그 정
교하고 묘함이란 이러한 정도가 될 수 있다.
이것은 사고의 작용에 의해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 이론은 미리 알 수 가 있지만 , 그것을 마음으
로 철徹저히 하고 , 기술技에 습숙習熟하고 , 수련에 의해 공적을 쌓아 올라가지 않으면 그와 같은 교묘
함은 얻을 수 없는 것이다. 내면적으로 뜻이 바르지 않고 , 외면적으로 신체의 자세가 바르지 않으면 , 근
골筋骨의 결속은 단단하지 않고 , 기氣가 몸 전체에 가득하는 일도 없기 때문에 강한 활 시위를 당겨 그
대로 있을 수도 없다. 정신이 안정되고 기氣가 생생하게 활동하는 일도 없고 , 마음대로 얕은 지혜를 짜
내고 , 궁도弓道의 바른 방법에 의하지 않고 그저 힘力으로 활과 활 시위를 당기는 것 과 같은 경우에는 ,
활의 본래 성질에 반反해서 , 활과 자신이 서로 타투는 꼴이 되어 따로 작용하고 , 정신이 서로 통하는 일
도 없고 , 오히려 활의 힘을 방해하고 나아가려는 힘을 없애 버리고 만다. 그러니까 화살을 멀리 보내고
과녁을 뚫을 수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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