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구예술론天狗藝術論.....제 1권(3)

 

다른 한 사람이 이와 같이 말했다.

칼刀이란 베는 것이다. 창은 찌르는 것이다. 그 이외에는 어떠한 사용법도 하지 않는다. 본래가 몸은 기

를 따르從고 , 기氣는 마음을 따르는 것이다. 마음이 동요하지 않을 때는 기氣도 동요하지 않고 , 마음

정平靜하고 집착하는 것이 없을 때는 , 기氣도 또한 온화하게 마음을 따르고 , 기술도 자연히 응수

하게 다. 마음에 응어리가 있을 때는 , 기氣가 가로 막혀 손 발이 무용지물이 된다. 기술에 마음을 두고

자 하면 , 도 거기에 정체하고 융화 하지 않는다.

마음을 넣어 강하게 하려고 해도 , 마음이 거기에 사로잡혀 허虛하게 되고 약해 진다. 의지意志의 힘으로

그것을 활성화 하려고 하는 것은 , 불길을 키워서 장작을 완전히 태워버리는 것과 같은 것이다.

기氣가 앞서면 말라서 바닥이 들어나고 , 막힐 때는 정체하고 굳어서 딱딱해 진다. 자신을 지키고 기다

서 응수 하려고 하면 , 서로가 상대를 노려 보고 만 있는 ` 미아이 ` 라는 것이 되어 , 자신이 자신을 봉쇄

하고 한 발도 나아 갈 수 없고 , 오히려 상대에게 가지고 놀림을 당하게 된다.  *거는懸 중에 기다리待

고 , 기다리待중에 건다懸 라는 등의 말들을 잘못 이해하게 되면 의도적이 되어서 큰 해害가 있다.

여기를 막고 저 쪽을 받아내려고 하는 사이에 , 기술은 미숙하나 혈기가 왕성한 사람을 만나면 두들겨 맞

고 , 받기만 하는 수동적인 칼刀이 되어 치고 들어가는 것이 불가능 해지는 사람도 많다. 이것은 모두가

의도적意図的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한 기술이 미숙한 사람은 응용동작도 모르고 , 여기를 막자 , 거기를 치자 라는 의도도 없고 , 본디

생겨난 혈기왕성한 사람으로 , 무엇도 두려워 하는 것이 없고 , 사람을 벌레따위로 얕잡아 보지도 않기

에 , 마음을 넣어서 강하게 하는 것도 없고 , 굳어서 딱딱해지고 긴장하는 것도 없고 , 기다리는 것도

고 , 삼가하는 일도 없고 , 의심하는 일도 없지만 동요하는 일도 없고 , 단지 서로 마주하고 있는 그대

고 , 어떠한 사려思慮를 쓰는 일 없이 , 심기心氣가 함께 머물거나 막히는 일이 없다. 이것은 세간에

하는 상당한 병법자兵法者보다도 기氣의 위位에서는 이기勝고 있는 곳이 있다 라고 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을 더 좋다 라고 하는 것은 아니다. 그의 경우는 큰 물결이 밀어닥치는 힘과 같이

막힘이 없다는 하지만 , 무지無知로 혈기에 맡겨서 무심無心한 것 뿐이다.

검술劍術은 마음과 몸에 본래 갖추어진 능력의 응용이고 , 어떻게 움직이더라도 그 전에 형形을 만들지

않고 , 흔적도 또한 남기지 않는다. 형태나 양상이 있는 것은 본래의 능력을 절묘하게 사용한 것이 아니

다. 가령 아주 약간의 생각을 움직인 때에도 기氣에는 형形태가 생기고 , 적敵은 그 형태가 생긴 곳을 치

고 온다. 

마음에 걸리는 것이 없으면 , 기氣는 온화하고 평온 하다. 기氣가 온화하고 평온한 때는 , 생생하고 활기

있게 자유로이 움직이고 , 굳이 강하게 하지 않아도 본래의 모습으로 강하다. 마음은 명경지수明鏡止水

같은 것이다. 무엇인가의 생각이 조금이라도 마음에 머물게 되면 마음의 밝은 지혜는 이 때문에 가로

막혀 자유롭게 움직일 수 없게 된다.

지금 시대의 무예자武藝者는 , 마음의 본체가 사물에 동動하지 않고 , 기술의 응용에 지장이 없고 , 몸이

유자재로 움직인다 고 하는 것을 모른다.

교묘하게 지혜를 써서 말단지엽의 사정들에 정신을 낭비하고 , 그것으로 자신이 대단한 것을 얻었다고

믿어 버린다. 그러니까 다른 무예심술武藝心術에 정통하는 것이 불가능 한 것이다. 무예심술은 분야가

넓다. 그것을 하나 하나 수행해서는 평생에 걸쳐서도 그러한 모든 것들을 얻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마음이 바르고 , 하나의 예藝에 철저하면 그와 다른 무예는 배우지 않아도 알 수가 있는 것이다.

 

 

*懸の中の待 待の中の懸 : 懸待一致의 뜻 , 방어는 공격을 위해서 이고 , 공격은 저절로 방어가 된다

  라고 설명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