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검도의 역사...(11)

 

중세의 주역이었던 활

 

중세일본의 싸움은 당초 활이 주역 이었습니다. 게다가 기마전이 대부분 이었던 탓에 말에 타고 활을
쏜다는 기사騎射의 기술이 굉장히 중요했습니다.

중세 무사는 이 기사의 기술을 철저하게 훈련하고 있었습니다. 유명한 것으로는 , `야부사메(流鏑馬)` 라고 해서 말 위에서 활을 계속해서 빠르게 쏘는 연습이 있었습니다. `잇기우치(一騎打)`를 할 때는 멀리서 부터 말을 타고 적과 스쳐 지나는 사이에 승부를 결정 지을 때 필요한 기술입니다. 또한 `이누오우모노(犬追物)` 라고 해서 도망하는 개를 말로 쫓아서 쏘는 연습도 하고 있었습니다.

왼 손으로 활을 가지고 오른 손으로 화살을 당겨서 조여서 쏘기 때문에 말에 타고 있는 상태에서는 기본적으로 진행방향에 향해서 왼쪽에 있는 표적 밖에는 공격 할 수가 없습니다. `이누오우모노`는 말을 몰아서 표적인 개犬를 자신의 왼쪽으로 몰아서 활로 쏘는 연습 입니다. 이 외에도 멀리서 놓아둔 표적을 말 위로 부터 멀리쏘는 화살로 맞추어 고정시키는 `카사가케(笠懸け)` 등도 있었습니다. `야부사메` `이누오우모도` `카사가케` 를 기사騎射의 삼물三物 이라고 말합니다만 , 당시의 무사는 이러한 방법으로 말을 타고 활을 쏘는 기사의 기술을 철저히 연마해 갑니다.

당시 잘 연마된 훌륭한 무사의 뛰어난 활 기술은 무문武門의 자랑이 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가치관이 일변 하게 됩니다.

 

철포의 전래에 따른 주역의 교대

 

1543년에 , `타네가시마(種子島)` 에 표류한 포르투칼인에 의해 철포가 전해 지면서 일본의 전쟁이 일변 합니다. 같은 날아가는 도구인 철포에 종래의 화살이 당해 내지 못한 것은 불을 보듯 뻔합니다. 원래 손재주가 뛰어난 일본인은 전해져 온 철포에 한 층 더 궁리와 개량을 더해서 , 상당히 우수한 철포를 만들어 낼 수가 있게 되었습니다. 수출까지 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전쟁 속에서의 주역이 화살에서 부터 철포로 바뀌게 됩니다. 그 상징적인 사건은 , 1575년의 `나가시노(長篠)`의 싸움 입니다. 전통적인 기마전을 특기로 여기던 타케다 카츠요리의 군대를 , 오다노부나가 와 토쿠가와이에야스의 연합군이 신병기인 철포를 3000정(이견도 있습니다) 이나 구사해서 무찌른 전쟁입니다.

최강이라고 불리던 타케다의 기마군단이 철포 앞에서 패배한 것으로 , 역사는 크게 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