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검도의 역사...(13)

 

5 . 검호劍豪의 시대    츠가하라 보쿠덴(塚原卜伝)

 

검劍의 시대의 개막開幕

 

중세후기로 부터 근세초기에 걸쳐서 , 검의 기술이 평범한 수준을 뛰어넘는 월등한 사람들이 나타납니다. 이 후에 검호劍豪라고 불리는 이들이 그들 입니다.

 

이 시대는 검도사의 속에서도 상당히 중요합니다. 중세후기는 , 여전히 살벌한 세상으로 무술이 실용성을 가지는 시대이기도 했습니다. 이 시대에 검이 주역으로 움직이기 시작하고 , 실전에서 이름을 날리던 검호가 몇 명이나 나타납니다. 그것이 토쿠가와 막부의 수립(1603)에 따라 평화로운 시대가 도래하고 , 실전의 경험을 가진 사람들이 그 뛰어난 기술을 논리화 해서 후세에 전하게 되었습니다. 난세와 치세를 잇는 검도 역사상 가장 재미있는 시대 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시대에 , `츠가하라 보쿠덴` 이라는 한 사람의 영웅이 등장합니다. 검호시대의 개막입니다.

 

검호劍豪... 츠가하라 보쿠덴(塚原卜伝)

 

전설에 따르면 , 츠가하라 보쿠덴은 17세에 쿄토의 키요미즈테라(淸水寺) 에서 진검승부를 한 이래 , 진검을 사용한 시합이 19번 , 그 외 전장에 나간것이 37번 있고 , 목도(검)을 사용한 시합에 있어서는 그 횟수가 100회에 이른다고 합니다. 그 사이 한 번도 방심해서 실패한 적이 없고 , 활에 의한 부상이 6군데 정도 있었던 것 외는 베인 상처나 찔린 부상을 당한 일은 없었고 , 싸워 이긴 적의 수가 무려 212명에 이른다고 합니다.

츠가하라 보쿠덴 이라는 검호가 얼마나 강했던가를 알 수 있는 이야기 입니다.

보쿠덴의 기술을 이어 받은 것으로 신토우류(新当流) 라는 검술유파가 생겼습니다. 일본의 검도역사에서 가장 주된 유파의 하나로 여겨지는 이 유파는 , 현재도 그 맥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카시마(鹿島:지금의 이바라키 현)의 검劍

 

츠가하라 보쿠덴(塚原卜伝)은 말하자면 일종의 천재 입니다만 ,여러가지 조건이 갖추어지고 서야 비로소 이러한 천재도 태어 날 수 있다 하겠지요.

우선은 보쿠덴을 낳은 카시마鹿島 라는 토지가 특별 했다고 하겠습니다. 여기에는 카시마 신궁(鹿島神宮)을 중심으로 한 독특한 검劍의 문화가 있습니다.

카시마 신궁은 , 무武의 신인 `타케미카 즈치`를 모시는 사당 입니다.  검劍의 신神이기도 하다고 일컬어 지는 이 신이 가지고 있는 검劍은 그 유명한 `후츠노 미타마노 츠루기` 입니다. 이 검은 `타케미카 즈치`의 분신 이라고 말해 지기도 했습니다.

닌토쿠仁德 천황 시절 , 카시마 신사의 신직神職 이었던 `쿠니나즈노 마히토` 라는 사람이 , 카시마 신궁의 경내에 제단을 만들고 낮과 밤으로 기원한 결과 , `신묘켄神妙剣` 이라는 극의를 깨닫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 기술이 카시마 신궁을 중심으로 전해져서 카시마의 땅은 무武의 성지로서 번성하게 되었습니다.

`쿠니나즈노 마히토`로 부터 전해진 이 기술은 , 당시 초기 , 카시마鹿島의 태도太刀라고 해서 , 시대가 흐름에 따라 카시마 죠코우류(上古流) , 카시마 츄코우류(中古流) 라고 그 이름을 달리하며 불리게 됩니다. 이 계통의 검술은 대대로 `요시카와吉川` 라는 가문을 중심으로 전해져 왔습니다. ‘요시카와‘ 가문은 원래가 카시마 신궁에서 점을 치는 일을 직무로 하던 신관의 가계 입니다. 카시마 신궁에서 연중의 길흉에 대해서 점괘를 본 결과는 , 「코토부레事触れ」 라고 해서 전국으로 전해지게 되었습니다.

츠가하라 보쿠덴은 , 연덕延德 원년(1489) , 이 요시카와 가문의 차남으로 태어납니다. 아명을 `토모타카朝孝` 라 했습니다. 당연히 , 아버지인 `아키타카覚賢` 로 부터 카시마 츄코우류(中古流)를 배웁니다.

태어나면서 부터 전통적인 카시마의 검술을 이어 받았다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