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마 미츠오 범사...(3)

 

명인名人... 코시카와 히데노스케(越川秀之介)

 

제가 훈도를 받은 선생님들 중에 , 이번의 테마 이기도 한 "유효타" 가 무엇보다도 가장 멋지다고 느낀 것은 코시카와 히데노 스케 선생님(범사9단) 입니다. 코시카와 선생님은 제가 오사카부 경찰 검도부 특훈생 시절의 수석 사범이시고 , 실로 명인 이라고 불리기에 어울리는 분 이었습니다.

코시카와 선생님은 당시의 지도진 중에서도 한 층 만큼 작고 , 죽도도 실례지만 장난감과 같은 것을 사용 하셨습니다. 무게로 말하자면 400그램 조금 이니까 현재의 규정인 510그램 보다도 꽤 가벼웠던 것 입니다.

선생님은 그 죽도를 자신의 신체 일부와 같이 사용하고 계셨습니다. 타돌에 `사에`를 만들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강도 , 타돌의 무게가 필요합니다만 , 선생님은 그 가벼운 죽도로 손목 치기는 물론 , 머리기술도 「팍 ↑」 하고 치는 것이었으니 역시 명인 입니다. 들은 이야기로는 선생님은 무도전문 학교의 전임 교수 이셨던 나이토우 타카하루(内藤高治) 선생님의 수련생 시절 손목을 부드럽게 하기 위해서 문풍지의 먼지 털기를 빠지지 않았다고 합니다. 선생님의 검도에 매진하는 생각에 압도되면서 동시에 , 아직 자신의 수련이 부족하다고 느끼게 한 일화 입니다.

일년에 한 번 교토대회에서는 , 선생님의 시연을 관중들이 굳은 침을 삼키며 지켜보고 있던 것을 지금도 선명하게 떠올립니다. 입합入合이 끝나면 「와~아」하고 환성이 올라가고 무덕전을 박수 소리로 감쌌습니다. 저는 선생님의 준비를 도와주는 역할로 함께 할 영광을 얻었고 선생님의 입합을 가까운 거리에서 볼 수 있었던 것은 대단히 귀중한 경험 이었습니다.

저는 오사카 경찰에 들어가 곧 정식 멤버에 뽑히게 되었고 , 코시카와 선생님께도 꽤나 귀여움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지금 생각나는 것은 , 죽도의 쥐는법에 대해서 지도를 받았을 때 입니다. 선생님은 「아리마 , 이 정도야」 라고 말하시고 , 죽도를 쥐고 있던 저의 왼손 주먹을 `꾹` 선생님의 손으로 감싸 주셨습니다. 그 따뜻함은 잊을 수가 없습니다. 지금은 , 죽도는 저렇게 쥐세요 , 이렇게 쥐세요 라고 세세하게 지도를 합니다만 , 실제 어느 정도의 힘의 가감인지 말로는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저는 선생님의 손의 따스함을 믿고 , 그 감각을 소중히 여기며 케이코에 힘썼습니다. 지금도 그것은 변함 없습니다.

 

 

아프지만 기분좋은 이야기

 

유효타 가 제대로 되어 있는 사람은 , 반드시 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손안의 작용도 좋은 법 입니다. 타돌부위를 쳤을 때는 이미 힘이 빠져있다. 이것이 사에를 낳고 나아가서는 심판원의 마음에 울리는 "유효타" 가 됩니다.

저는 8단으로 승단하고 부터 두 번에 걸쳐서 메이지 무라 대회에서 우승을 할 수가 있었습니다. 처음으로 결승에 이긴 제 22회 대회는 경시청의 치바마사시 선생님(범사8단) 이 상대 , 다음해 우승을 장식한 제23회 대회도 상대는 치바 선생님 이셨습니다. 참고로 치바 선생님은 현역 시절에도 전일본 선수권에서도 자주 대전을 한 적이 있고 , 저에게는 생애의 라이벌 이라고 말할 수 있는 소중한 분 입니다.

치바 선생님은 상단으로 부터 날카로운 한손 손목이 장점 이었습니다. 이것이 특히나 절묘해서 선생이 손목을 치시면 , 호구가 「빠까↑」 하고 깨지는 듯한 감각이 있었습니다. 어지간히 손안이 좋다 라고 시합을 하면서 느낄 수 있었습니다.

통상 , 타돌은 맞으면 통증이 동반됩니다. 특히 상단인 분들과 시합을 하면 , 손이 저리고 , 팔이 부어오르는 것과 같은 일도 종종 있었습니다. 그러나 치바 선생님의 타돌은 다릅니다. 한 마디로 말하자면 아프면서 기분 좋다 입니다. 힘 만으로 가 아니라 , 한 칼 한 칼 "벤다" 는 것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런 기술이니 만큼 , 설령 주먹에 맞았다고 해도 심판원의 깃발이 올라가는 수도 있고   이쪽도 "아뿔싸" 하고 마음心을 맞는 것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