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마 미츠오 범사...(2)

 

은사恩師  치카나리 히로시(近成弘)

 

저의 이야기를 하는 이상 , 은사이신 치카나리 히로시(범사8단) 선생님이 등장해 주시지 않으면 안됩니다. 저는 초등학교 4 학년 때 , 고향인 오카야마 니시다이지 무덕전에서 검도를 시작했습니다만 , 그 지도자가 치카나리 선생님 이셨습니다. 이후 고등학교 3년 까지의 9년간 , 선생님께 빈틈없이 단련 받았습니다. 선생님은 고무사古武士와 같은 분위기를 풍기고 계셔서 , 어쨌든 엄격한 분 이었습니다. 단 엄하다고 하면 체벌 이라든가 그러한 것이 아니라 , 특히나 케이코가 엄하셨다는 것 입니다. 그리고 , 선생님의 케이코에는 정情이 있었습니다. 지금의 제가 있는 것은 치카나리 선생님의 지도를 받았던 9 년 이라는 세월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마음 깊이 생각하고 있습니다. "결정타 유효타" 의 이야기로 부터 벗어나지 않도록 하지 않으면 안되지만 , 치카나리 선생님은 지도가 발군으로 뛰어나셔서 , 논리적이고 그때까지 되지 않던 것도 선생님의 지도를 받으면 금방 가능해 졌습니다.

치카나리 선생님께 받은 지도를 회상해 보면 , 예전의 선생님들은 모두가 그렇지만 무엇보다도 기본을 중시 하셨습니다. 특히 발 놀림의 케이코는 허리와 발이 더 이상 서 있지 못할정도 까지 몇 번이고 반복해서 행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저는 신장이 큰 편이 아니었고 선생님도 그러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발 움직임의 중요성을 몸에 각인 될만큼 느끼고 있었던 것이지요. 저는 올해로 70를 맞이 했습니다만 연령을 생각한다면 지금도 발 놀림은 좋은 편이라고 자부 하고 있습니다. 여기까지 발 움직임을 유지 할 수 있었던 것은 , 두말 할 것도 없이 선생님의 지도 덕분 이었습니다. 발 움직임이 좋다는 것은 다시말해 체세의 무너짐이 적다는 것 과도 이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선생님은 자연히 "결정타 유효타"의 중요성도 지도 해 주셨다고 지금 되돌아 보며 생각합니다.

선생님의 지도에서 하나 더 , 지금도 명심하고 있는 것은 베어내린 깊이 입니다. 선생님은 타돌 법의 지도를 하실때에 , 머리치기 라면 여기까지 , 손목치기 라면 여기까지 라는 식의 베어 내리는 것의 깊이를 명확하게 하고 계셨습니다. 죽도는 부위를 타돌한 상태에서 멈추지만 , 의식으로는 좀 더 깊이 베고 들어가지 않으면 타돌에 `사에`는 생기지 않는다 , 그러한 것 입니다. 선생님의 타돌은 이 쪽이 베여 나간다는 착각을 할 정도로 예리한 것 이었으니까 , 엄청나게 손 안으로 부터 나오는 "결정타 유효타" 가 좋았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