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고단자의 수행 ........ 히라노 요시아키

" 상대의 행복을 바라는 것 , 이것이 `친절 親切` 입니다. 상대의 다음 단계를 먼저 내다 보고 , 여기 라고 하는 곳에서 감싸 안듯이 엄하게 , 거세게 부딪치고 , 이끌어 주는 것 입니다. 오가와小川 선생님과 야규柳生 선생님의 후진을 대하시는 모습을 보고 , 깊이 깊이 그것을 느꼈습니다."

 

( 저는 선禪을 조금 이나마 하고 있는 사람이니까 , 무언가에 대해서도 `死` 혹은 `安心` , 혹은 `親切을 다한다盡` 라고 하는 것에 생각과 마음이 가 버립니다. 제가 수행하고 있는 柳生新陰流에 대해서도 그렇습니다. `死`를 적면 눈앞에 두는 것에 의해 정묘精妙한 기술은 성립하고 있습니다. `死` 란 인간에게는 피 할 도리가 없는 것 입니다. 그러나 그 `死`를 `生` 의 안에서 짧은 순간으로 바꾸고 , `安心` 다시 말해 마음의 평안으로 자신을 이끈다. 여기에 新陰流의 철학적 이념이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 때문에 기술의 精妙함이 한층 두드러 지는 것이 아닐까요. 新陰流 만이 아니라 , 정전正傳의 고류古流는 모두 같습니다. ` 자신의 生死 `를 건 기술이고 수행인 것 입니다. 결국 얼굴을 맞대는 `자신의 死` 를 넘어서야 비로소 성립하는 검기劍技 라고 말 할 수 있습니다. 柳生新陰流 의 活人劍 , 이것은 상대에게 충분히 움직이게 하고 , 상대가 이겼다 고 생각하는 상황에 승리를 得하는 劍 입니다. `死` 를 눈 앞에 둔다는 점에서는 최상의 경지로 , 극치極致 라는 느낌마저 듭니다. 실로 ` 死 ` 와 등을 맞댄 ` 生 ` 의 劍 이라고 말해야 겠지요. 그런 만큼 新陰流 의 劍 의 理 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도 있는 것 입니다.)

죽도 검도로는 도저히 거기까지는 도달하기 어렵다 ..... .

( 아니요 , 그렇다고 도 단언 할 수 없습니다. 오가와 선생님의 검도를 직접 삼가 보게 되고나서 , 그렇게 생각합니다. 확실히 `死` 는 눈앞에는 없습니다. 그러나 선생님의 속에는 있지 않았을까요. 선생님은 진정한 一本 을 계속 구하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부동심不動의 마음心 , 강한 하라腹 ,호연浩然의 氣 를 양성하는 것에 노력을 거듭하시는 것을 저는 잘 보았습니다. 그 不動心 이라든지 上 , 中 , 下  丹田을 통솔하는 강대한 `하라`腹 는 , 말 하자면 ` 生 ` 이고 , 禪 에서 말하는 ` 安心` 입니다.)

부동不動의 마음心 , 강한 `하라`腹 만들기 , 이것을 추구해 간다면 , 죽도 검도 에서도 ` 死 ` 를 목전에 둔 고류古流와 같은 검리劍理 의 심오深奧함 을 구 할수 가 있다 ......

( 네 , 저는 그렇게 생각 합니다. 오가와 선생님의 남기신 말씀 중에 ` 내我 가슴胸에 검도劍道이념理念을 품고 죽음死으로 가는 오늘今日 이야 말로 즐겁지樂 아니한가 ` 는 어딘가의 소재를 나타 내시는 것 이라고 생각 합니다. 고단자 여러분들도 모두 `거기`를 구 하고 계시지는 않습니까 ..) 

그런데 , 히라노 교사는 처음에 `死` , `安心` 이라고 말하고 , 하나 더 `친절을 다 한다` 라고도 했다. 이 `친절親切` 이라는 것은 어떠한 의미 일까

( 오가와 선생님과 야규 선생님이 후진을 대 하실때의 자세를 보고 느낀 것 입니다. `親切` 이란 불교의 ` 중생무변서원도 衆生無邊誓願度 ` 다시말해 `선도先度타 의 발보제심發菩提心` 의 것 입니다. 알기 쉽게 말해서 , 상대의 진정한 행복을 바르게 빌어 주는 것 입니다. 상대의 다음 단계를 내다 보고 , 여기 라고 하는 상황에서 끌어 감싸듯 엄하고 세게 부딪치고 , 끌어 주는 것 입니다만 , 거기에 다른 생각이나 의도는 전혀 없습니다. 단지 ! `親切` 을 다 할 뿐 입니다. 오가와 선생님의 케이코 와 강화講話 그리고 곁에서 보게 되었던 일상에는 그것이 넘치고 있었습니다. 야규선생님은 케이코에서 특히 , 엄정嚴正히 저의 신심身心을 때려 주셨습니다. ` 不打不成材 ` 입니다. 명장이 명검을 창작하는 이상의 단련과 연마가 없어서는 ` 正傳` 은 있을 수 없습니다. 거기에는 커다란 자비慈悲의 마음에 뿌리한 ` 大親切心` 만이 있을 뿐 입니다. ` 지금의 세상 이 일본 이라는 나라에서 正師 : 바른 스승 ,의 바로 아래에 찾아가 뵙고 打成預 : 두드려 지고 단련되어 이루어 짐을 맡긴다 !` 실로 지복至福 , 도열지극道悅至極 이라는 것은 이러한 것 입니다.)

기자가 메모를 적던 손을 멈추고 , 가슴 앞에서 천천히 팔짱을 낀다. 히라노 교사의 이야기가 이어진다.

( 돌계단石段 을 예를 들어 말 하자면 , 제가 첫 계단에 있다고 합니다. 두 선생님은 정상에 가깝고 , 저보다 십 수계단 이나 위에 계십니다. 돌계단을 하씩 오를 때 마다 차원次元 이라는 경치가 크게 바뀝니다. 선생님은 위로 부터 7번째 계단까지 내려 오셔서 ` 8번째 계단에서의  경치는 아주 좋아 , 자 어서 올라와 보거라 ` 라고 끝임 없이 격려 해 주십니다. 그러한 그림圖 , 이것이 ` 친절親切을 다한다盡 ` 라고 하는 것 입니다.)

역시 , 이건 이해하기 쉽다.

( 그렇습니까 , 그건 다행 인데요^^)

돌계단石段  이라고 해도 , 이 경우는 한 발로  폴짝 오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 좀더 단차段差가 있는 것 이라고 상상해야 할 것 이다.

( 네 . 그렇지요 , 수행의 돌계단石段 이니까요  ^^)

그렇게 말하고 웃고 나서는 , 히라노 교사는 시선을 올려다 보고 , 뭔가를 혼자 말 하고 있다. 들리지 않는다. 무슨 말 이었을까 ...

( 저 자신의 수행 모토에 석단石段을 넣어 보면 어떨까 생각 해 보았습니다만 , 지금의 모토에 비교해서 어려語呂: 말이 이어 지면서 생기는 느낌 ,가 좋지 못해 그만 두었습니다. 지금의 모토 말 입니까 ..?

` 갱상일층루 更上一層樓 `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