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고단자의 수행 ....... 스에노 에이지

" 저는 헤이세이 11년(1999) 11월 의 수심에서 8단에 합격 했습니다. 그 한달 전의 일 입니다. 저는 아침 케이코에서 땀을 흘리고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문 앞에서 앉아 보고 있습니다. 집에 돌아가니 , 아버지는 말씀 하셨습니다. ( 에이지 , 너 , 물러 나고 있어 ) 슬쩍 , 단지 그 한 마디 였습니다."

 

8단 합격까지 , 스에노 교사는 5년 걸렸다. 그러나 그 5년이 결코 무의미 한 것은 아니었다 , 라고 스에노 교사는 말한다.

그랬다고 하더라도 , 스에노 교사의 역량으로 보자면 5년은 길다. 아홉 번 이나 불 합격 이었던 것 이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 일까.

카고시마 현 경찰에서는 리도離島(외딴 섬) 근무가 의무화 되어 있어서 , 시마노 교사는 헤이세이 7년(1995) 3월 , 타네코 시마種子島에 전근 했다. 혹시 이것이 큰 영향을 미친 것이 아닐까 ....

( 전근 한 그 해 5월 , 8단 심사 첫회 였습니다. 실력으로는 아직 충분치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만 , 실제의 분위기를 피부로 느껴두고 싶다고 생각해서 , 심사를 보았습니다. 그 후의 2년간은 타네코 시마種子島에서 오로지 케이코를 거듭 했습니다만 , 말씀처럼 그 영향은 적지 않게 있었다고 생각 합니다. 케이코 양이 극단적으로 적어 졌고 , 힘이 떨어져 간다는 실감이 확실히 있었습니다. 그러나 , 가능 한의 노력은 했다고 생각 합니다. 섬에서는 니시노 오모테西之表 시 검도연맹의 케이코회가 주에 3회 있었습니다. 약 1시간 동안 , 참가자는 중학생이 한 명 인 경우도 있었습니다만 , 평균해서 3~4명은 모였다고 생각 합니다. 저는 한 번도 쉰 적이 없습니다. 체력 만은 떨어뜨리지 않겠다 , 그런 마음으로 부터 `스부리`素振 와 뛰어 들어가기 도 하였고 공간 타돌 연습도 일과의 하나가 되었습니다.)

 할수 있는 노력은 전부 했다.

( 그런 작정 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한계 였습니다. 케이코가 되어 있지 않다 , 그 마음이 카고시마에 돌아와서 분발 할 수 있는 큰 힘이 되었습니다. 2년 계획을 세워 , 우선 체력을 다시 만들고 , 다음에 검도 감勘을 돌리는 것에 전념했습니다. 체력과 검도 감이 돌아오고 있는 즈음 부터는 , 그때 까지의 심사에서 숙제로 안고 돌아 왔던 것을 , 여러가지 넣어 보도록 했습니다.)

여러가지란 ..?

( 카마에 라든가 , 무리가 없는 움직임 과 타돌 , 결국 8단으로서의 이합理合에 맞는 몸 놀림 , 칼 놀림 , 타돌 기회의 포착 등을 몸에 익히도록 했던 것 입니다.)

카마에 ? 변한 것 같지는 않은데 , 대체 어디를 바꿨을까 ...

( 이전 부터 허리를 넣으려고 했습니다만 , 자칫하면 너무 넣어 버린 상황이 있었습니다. 그러면 조금 뒤로 젖혀지는 형태가 됩니다. 복부가 상대와 정면으로 마주하지 않고 , 따라서 `하라 腹` 의 힘이 위로 빠져 버리는 느낌이 있었던 것 입니다. 그래서 생각 했습니다. 묵상을 할 때의 정좌靜座의 자세는 , `하라`가 곧 바로 앞을 향하고 , 충실함을 느끼게 됩니다. 이것을 카마에로 가져 온다면 어떨까 라고 생각 했던 것 입니다. 해 보니 좋은 느낌 이었습니다. `하라` 의 힘을 확실히 느낄수 있었습니다. 자연 , 칼끝은 조금 내려 갔습니다. 그러나 위화감은 거의 없고 , 오히려 칼끝에 힘이 들어가는 것 같은 느낌 마저 있었습니다. 왼발을 항상 끌어 당기도록 한 것은 물론 입니다.)

왼 발이 제대로 끌어 당겨지고 , 정좌靜座 의 자세 그대로를 카마에로 가져 왔다.

( 딱 , 머리를 위로 부터 끌어 당겨져 , 슷~ 하고 , 실로 슷~하고 서 있는 감각이 있었습니다.)

자세가 이전보다 몇 단계 좋아졌다 ^^

( 그것은 자신은 알지 못합니다 ^^ 단지 , 언젠가 읽었던 대삼조현선사大森曺玄禪師가 말하고 있던 것은 이것 이었구나 라고 생각 했습니다. 제4 요추腰椎와 제5 요추腰椎 사이로 부터 수평으로 선을 그어 , 배꼽과 만나면 거기부터 치골恥骨로 가져 간다. 그 삼각형이 만드는 한 가운데가 몸의 중심 , 다시 말해 단전丹田 이 있다. 대략 그런 설명 이었습니다. 허리를 너무 넣을 경우 , 제4 요추 와 제5 요추 의 한 점에서 수평으로 그어도 배꼽을 지나지 않습니다. 배꼽의 아래 쪽을 가 버립니다.)

그렇다 , 그런 것이 된다.

( 그러나 정좌의 자세라면 , 그 선이 확실히 배꼽과 교차 합니다. 단전丹田이 정해진 카마에 라는 것은 이것 이었다고 생각 했습니다.)

카마에가 우직해 졌다 .... .

( 네 그것이 실감 되었습니다.)

 조금 틈을 두고서 ( 그러나 ...) 라고 스에노 교사는 말한다.

( 저도 노력 했습니다만 , 8단 합격을 가능하게 했던 것은 아버지의 한 마디 였던 것 같은 느낌 입니다. 열 번째의 8단 심사는 헤이세이 11(1999)년 11월 이었습니다. 그 한 달전 이었다고 기억 합니다. 저는 아침 케이코에서 땀을 흘리고 , 이번 에야 말로 라는 마음으로 조정하고 있었습니다. 아버지 스에노 사카에 범사 7단 은 언제나 같이 문 앞에 앉은 채로 보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 제가 집으로 돌아오자 마자 이렇게 말씀 하시는 것 입니다. `에이지 , 너 , 물러나고 있어 , 그래서는 안된다 ` 슬쩍 , 단지 그 한 마디 였습니다. 저는 , 에..? 물러 난다는 생각은 없는데 .... 라고 생각 했습니다만 입으로 말하지는 않았습니다. 오히려 이건 좋은 조언을 받았다고 받아 드렸습니다.)

스에노 교사는 , 상대에게 눌려져서 물러 났던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 사카에 씨도 충분히 알고 있었을 터 였다. 그러나 ,8단을 보려면 그러한 검도 로는 통과 할 수 없다 , 라고 애써 쓴소리를 주신 것 이다.

( 저도 그렇게 생각 합니다. 아버지의 속에는 8단의 이미지가 제대로 잡혀져 있었던 것 입니다.)

그 사카에씨는 , 헤이세이 14년(2002) 5월 28일에 돌아 가셨다. 91세 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