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구예술론天狗藝術論.....제 3권(7)

 

여러 유의流儀 어느 것이나 그 구극究極의 원리에 이르러서는 같은 것이다. 여러가지 유의가 있는 것

은 , 각 유의의 선각자들이 수련한 경험으로 부터 자신이 들어가기 쉽다고 생각하는 문과 창으로 부터

제자를 받아드리고 인도하고 있는 것 뿐이다.

그러나 수행과정에서의 경험에 애착을 느끼고 , 거기에 마음을 끌어모아 이것이야 말로 진리라고 굳게

믿는 사람이 많다. 그러한 것으로 부터 말단의 유의가 많이 발생하고 , 서로가 옳고 그름을 다투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여러 유의의 구극의 원리에는 시비를 다투어야 하는 것은 없다. 그와 같은 수행과정의

경험은 모두가 그저 그와 같이 믿어버린 것 뿐이다. 대본 大本의 원리原理는 하나一이다. 둘 셋은 없다.

그것이 여러가지로 나누어 질 때 선악이 있고 , 바름과 간사함이 있고 , 강함과 유함 , 장점과 단점이 있

다고 하는 것이되고 , 그것들의 말단에 이르기까지 다 논한다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 하다.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타인은 알 리가 없다 라고 생각하는 것은 어리석다. 자신에게 밝은 지혜叡知(예

지)가 있다면 타인에게도 예지가 있는 것이다. 어째서 자신만이 지혜가 있고 ,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어리석다 라고 하는 일이 있을 것인가  그러니 무엇이든 숨길 것이 없는 것이다.

학술의 경우에도 또한 같은 것이다. 노자 , 불교 , 장자 , 열자 , 소부 , 허유의 학도들도 , 구극에 있어서

무아무욕無我無欲의 마음의 본체를 보는 것은 동일한 것이다. 그러한 이유로 아주 조금의 사념도 마

음을 속박하는 것은 없다. 단지 그것에 이르는 도중에 바라보는 시각이 다른 탓에 , 나누어서 다른 학문

이학異學이 되어 있는 것 뿐이다.

성인 聖人의 도道는 하늘을 머리에 이고 , 단단히 땅에 발을 붙이고 걸으며 , 마치 산하도 대지도 남길

것이 없다 라고 하는 듯이 , 모든 분야에 통하고 있다. 예를 들면 부부간의 어리석은 사소한 일도 단정

하게 임하고 바르게 처리 할 것이다. 천하天下에 인의仁義에 따르지 않는 사람은 없고 , 효제충신孝悌

忠信을 나쁘게 말하는 사람은 없다. 인도의 불교도 들도 성인의 사상을 접하게 되면 반드시 인의仁義의

가르침을 받아드릴 것이다. 그것은 이학異學의 사람들의 어중간한 사상이 미칠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세상 모든것의 대본大本이라고 해야 할 것이 위로 부터 아래로 내려다 보고 있기 때문이다. 이학의

무리라고 해도 모두가 성인聖人의 다른 파別派인 것이다. 대도大道를 등질 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