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검도의 역사...(25)

 

나카니시 츄우죠 츠구타케中西忠蔵子武 로 부터의 보급

 

‘지키신 카게류直心影流` 에서 "죽도 대련 케이코" 가 행해지게 되고서 부터 약 50년 후의 보력宝暦 명화明和 년간(1751~1772) 에 이번에는 ‘잇토우류一刀流‘ 의 `나카니시 츄우죠 츠구타케` 가 도구를 보다더 개량해서 "시나이 죽도" 에 의한 케이코를 종래의 형形 케이코에 더하기 시작 했습니다.

당시 , ”시나이 대련 케이코” 에 대해서 찬반 양론이 있었습니다만 이 케이코법의 채용에 대해서는 ‘잇토우류‘ 안에서도 비판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오노小野파 잇토우류‘ 의 종가도 , 나카니시 츄우죠의 "시나이 대련 케이코" 채용에 비판적 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도구를 착용하고 "시나이" 로 서로 공격하는 이 케이코 법은 시합의 형식으로 행할 수 있었기 때문에 형形 케이코의 결점을 보완하고 사람들의 흥미를 끌었던 것은 지당한 것이었습니다. `잇토우류 一刀流`라고 하면 에도시대를 통해서 가장 번성한 검술유파의 하나 였고 , `나카니시 츄우죠` 는 에도에 도장을  열었기 때문에 , 이것을 계기로 세간의 주목을 모아서 넓게 보급하게 됩니다.

"시나이 대련 케이코" 의 등장에 의해 검술은 비약적인 발전을 하게 됩니다.

 

 

11 . 신류의 대두와 에도삼대 도장

 

"시나이 대련 검술" 의 융성

 

"시나이 대련 검술" 의 발명은 획기적인 것 이었습니다. 에도시대 중기에 고안된 이 케이코법이 , 저희들이 매일 케이코 하고 있는 현대검도의 원형입니다. 기본적으로는 바뀐것이 없이 현재에 있어서도 행해지고 있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 이 대변혁은 무도武道의 역사를 생각하는데 있어서 상당히 중요한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상대를 상처 입히거나 하물며 죽이거나 하는 일 없이 , 혹은 스스로가 생명의 위협을 받는 일 없이 , 실전의 느낌을 가지면서 검의 이법理法을 수련 할 수 있다. 거기다 안전성도 확보한 속에서 승부를  할 수 있는 경쟁의 요소가 다분히 포함되어 있다는 점에서 재미가 있고 , 또한 진짜로 대련 할 수가 있으니 신체의 단련도 가능하다는 측면도 있습니다.

그때까지의 형 검술이 단숨에 "시나이 대련 검술" 로 바뀐것이 아니라 최초는 형 검술을 보충하는 역할 이었던 것이 서서히 검술의 케이코의 주류가 되었습니다.

형 검술의 화법화華法化로 부터 쇠퇴기미 였던 검술은 "시나이 대련 검술" 의 등장에 따라 갑자기 활기를 되찾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