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검도의 역사...(24)

 

검도구(防具) 의 고안

 

한편 "시나이 대련 검술"의 성립에는 검도구의 존재도 중요합니다.

현재 저희들은 방구 , 호구 라는 말을 자주 사용합니다만 , 에도시대에는 방구防具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무구武具 나 구족具足 , 죽구족竹具足 이라 불리는 말들이 사용되어 졌던 것 같습니다. 현대검도에 있어서도 정식적으로는 검도구劍道具 라는 말을 사용합니다.

검도구의 발생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습니다만 , 이미 에도시대 초기로 부터 몇 군데의 유파에서 부분적으로 사용되고 있었습니다.

센다이仙台 번藩에 전해지는 `사가와狭川 파 신카게류` 가 일찍이 부터 안면을 덮는 「면호」 와 「손장갑」 을 사용하고 있었던 것 이나 , 혹은 쿠마모토 의 `운코우류雲弘流` 에 있어서도 18세기 초반 부터 도구를 사용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보고 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 통일된 형태는 아직 존재하지 않았고 , 그 각각의 유파에서 여러가지가 있었던 걸로 추측됩니다.

또 도구의 발전과정에서 , 아무래도 창술槍術의 방구防具 와의 관계가 있었다는 것이 지적 되고 있습니다. 오로지 날카롭게 찌르는 기술만을 주로 하는 창술에서는 일찍이 호면이나 동胴과 같은 방구가 고안되어 져 있었고 , 이것이 검술에 응용되어 졌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반대로 호완은 검술의 것이 창술에 유용되어진 예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상세한 것에 대해서는 정해진 것이 없지만 , 검술과 창술에서 서로 보완하는 식의 형태로 도구를 발전시켜 왔다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떠하든 도구에 관해서는 불명확한 점이 많아서 , 이상과 같은 의논이 있다는 것을 여기에서 소개해 둡니다.

 

 

나가누마 시로자에몬 쿠니사토長沼四郎佐衛門国郷 에 의한 "시나이 대련 케이코"

 

방구를 사용한 "시나이 대련 케이코" 가 일반화 하는 계기를 만든것은 , 뭐라해도 `지키신 카게류直心影流` 의 `나가누마 시로자에몬 쿠니사토` 입니다. 일반적으로 그의 이름은 유명하고 `쿠니사토` 혼자서 이 대 변혁을 행한것 처럼 말해지는 일도 있습니다만 , 실제는 그 전에 다소의 경위가 있습니다.

`쿠니사토` 의 아버지인 `야마다 헤이 자에몬 미츠노리山田平佐衛門光徳` 는 젊은시절 목검을 가지고 시합하던 중 부상을 입었던 일로 인해 , 32세의 나이에 부상을 방지하기 위한 호면 과 장갑을 착용하고 케이코 하고 있던 `타카하시 단죠 자에몬高橋弾正佐衛門` 에 입문 합니다. `지키신 카게류直心陰流`는 원래가 , 카시마鹿島의 검술 영웅인 `마츠모토 비젠노 카미松本備前守` 를 유조流祖로 하고 , `신카게류新陰流` 의 개조開祖인 `카미이즈미 이세노 카미上泉伊勢守` 를 2대조로 하는 유파로 , 그 후에 명칭을 바꿔가면서 계승되어져 온 유파 입니다. `타카하시 단죠 자에몬`은 이 계통 속에서 , 스스로가 유파의 이름을 `지키신 세이토류直心正統流` 라고 칭하고 있었습니다. `야마다 헤이자에 몬`은 이 계통을 이어 스스로 도구를 사용하는 케이코를 해서 , `지키신 카게류直心影流` 라는 이름으로 세상에 알리게 됩니다.

아버지인 `야마다 헤이자에 몬` 으로 부터 `지키신 카게류`를 이은 `나가누마 시로자에몬 쿠니사토`는 , 그때까지 부분적으로 사용되던 도구에 개량을 더해서 , 현재와 같은 호면 , 호완 , 동 , 갑상 등이 갖추어진 도구를 완성 시켰습니다.

이것이 정덕正德년간(1711~1716) 의 일 이었다고 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