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검도의 역사...(18)

 

형形에 의한 기술의 전수

 

그러면 유파에 있어서 기술을 전수하는 방법은 어떠한 것 이었는가 하면 , 그것은 형形에 의한 케이코 였습니다. 무술은 적을 무너뜨리는 기술이니까 본래 기술을 사용한다는 것은 상대에게 상처를 입힌다 , 혹은 죽여 버린다 는 것을 의미 합니다. 그러나 기술을 케이코하는 것에 있어서 매번 다치거나 해서는 곤란하고 , 하물며 죽어버려서는 어찌할 방법도 없다 하겠지요. 그래서 거기에 이러한 살상을 배제 하는 궁리로 이미 중세의 예도藝道의 세계에서 확립해 둔 형形의 케이코를 도입 합니다. 다도茶道나 화도 華道 능악能樂 등 에서 행해 지고 있었던 기술을 형으로 케이코 하는 방법 입니다.

스승의 동작을 흉내내는 것으로 시작해서 , 정해진 형을 촌분의 어김도 없이 행하는 것을 철저히 합니다. 최초의 단계에서는 개개인의 궁리나 개량을 일절 인정하지 않고 , 오로지 한 길 정해전 것을 반복해서 행합니다. 정해진 형의 동작에는 유조가 만들어 낸 뛰어난 기술의 진수가 포함되어 있고 , 정해진 형을 몇 번이고 몇 회이고 반복해서 행하는 것에 의해서 그 동작을 신체가 익히고 필연적으로 기술의 진수眞髓도 스며 들게 된다는 사고방식 입니다. 최초는 까닭도 모르고 옹색하기 이를 때 없고 , 즐거움은 커녕 괴롭기가 그지 없겠지요. 하지만 이것을 참아내고 철저히 하도록 합니다. 우선은 간단한 것으로 부터 시작해서 개개의 동기를 높여가는 현대의 방법과는 정 반대 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신체에 스며든 유파의 진수는 실전에서는 정해진 형을 벗어나서 움직이더라도 무너지는 일은 없습니다. 이제 곧 의식을 하지 않더라도 동작이 유의로 부터 벗어나는 일 없이 , 그 특징을 다 갖추고 있는 상태가 됩니다. `야규 무네모리柳生宗矩‘의 『병법가전서兵法家傳書』 에 「습習을 벗어나서 습習에 어긋남이 없이」 라고 쓰여 있는 것은 , 이것을 두고 하는 말 입니다.

형形의 케이코에는 단계가 있습니다. 이 단계를 자주 「수守 파破 리離」 라는 말로 표현 합니다. 처음은 철저하게 스승이 정한 형形을 지키고 이것을 신체에 익힌다. 이것이 「수守」의 단계 , 그리고 이것이 어느정도 가능해 지고 능숙해지면 다음의 단계로 , 그때까지의 형形을 깨고 자신의 것으로 궁리하고 발전 시켜서 활용한다 , 이것이 「파破」의 단계 , 그리고 최종적으로 최초의 형形으로 부터 벗어나 자유자재로 움직인다 , 라는 것이 「리離」의 단계 , 이 세가지의 단계를 밟아 가도록 가르칩니다.

이러한 사고방식은 다도茶道의 영향을 받았다고 말 합니다. 에도시대 중기 후기의 다도인茶道人 이었던 `카와카미 후하쿠川上不白`(1719~1807) 라는 인물이 저술한 『불백필기不白筆記』 라는 서적에 이 수守 파破 리離에 관한 것이 기록되어져 있습니다.

이러한 예능에 있어서의 케이코 이론을 채용해서 유파는 발전해 가게 됩니다. 종래의 무술이 무예武藝라고 일컬어 졌던 이유도 이러한 까닭 입니다.

 

철저한 비밀 주의

 

당시의 무술유파는 철저한 비밀주의를 하고 있었습니다. 기술이 다른 곳으로 흘러들어가면 그 기술로 자신들이 죽임을 당할지도 모른다 , 그러한 험악한 시대 였습니다. 따라서 가르침을 받은 내용은 설령 친형제 이더라도 다른 곳에 말하는 것은 허락되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것을 잘 나타낸 것이 , 신문서지神文誓紙(기청문起請文 이라고도 합니다) 입니다. 이것은 입문시에 사범가에 제출하는 것으로 , 전수 되어진 내용을 부자지간 이라도 밖으로 흘려서는 안된다는 것을 서약하고 , 이것을 어겼을 경우에는 신벌神罰을 달게 받는다 는 것을 쓴 서약서 입니다.

문록文禄 3년(1594) , 에도막부를 열기 전의 `토쿠가와 이에야스(徳川家康)`는 `야규 무네요시(柳生宗厳) `와 쿄토의 외곽에서 스스로 목도를 가지고 서로 마주 했습니다. 이때 `무네요시` 는 , 무도빼앗기無刀取り(무장하지 않은 상태에서 상대의 칼을 빼앗기) 의 극의極意를  보여줍니다. `토쿠가와 이에야스`는 그 기술에 감복해서 그 장소에서 자신을 제자로 받아 줄것을 무네요시 에게 희망합니다. 이것이 야규柳生 가문이 후에 막부에 들어가고 , 쇼군의 검술사범으로서 `신카게류新陰流` 를 가르치게 되는 계기가 됩니다. 이때 이에야스는 , 신문서지神文誓紙를 `무네요시` 에게 건냅니다. 당시 이에야스는 이미 전국戰國의 가장 높은 다이묘 입니다. 이러한 이에야스 조차도 , 당시의 일개의 검술가에 지나지 않았던 야규柳生에 입문 하는 것에 서약서를 제출 하고 있었던 것 입니다.

얼마나 당시의 검술유파가 철저한 비밀주의를 지키고 있었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유파의 교습과정 에서는 초보로 부터 심오한 단계까지 몇 단계가 있고 , 스승은 제자의 기량이나 인격 , 수행태도를 파악하고 단계적으로 기술을 전수해 갔습니다만 , 중요한 것은 타인에게 보이는 것을 막기위해서 구전에 의해서 전해진 것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또한 진정으로 중요한 극의極意는 , 제자라고 해도 많이는 전하지 않고 , 기본적으로 한 사람에게만 가르쳤습니다. 이것을 일반적으로 일자상전一子相傳 이라 하고 있습니다.

엄격하게 비밀을 지켰기 때문에 , 유파는 존속 했던 것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