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고단자의 수행 ........ 히라노 요시아키 ( 平野 宣昭 )

" 오가와 츄타로 小川忠太郞 선생과 徹禪無形老師 , 저에게는 다가 가기 힘든 존재 였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저의 마음 속에 있고 , 저의 세계에서 가깝게 느낄 수 있습니다. 게다가 생각 할 때 마다 새롭다. 다시 한번 더 가르침을 받고 있는 것 같은 느낌 입니다."  .........(1)

 

28세 때 였다고 한다. 히라노 교사는 文京區 春日町에 있던 경시청 무도관에 아홉명의 동료들과 기숙을 하고 , 1년에 걸친 제 8기 무도전과 강습를 받고 있었다. 동료로는 , 하마사키 미츠루 , 엔도 마사아키 , 오오야마 요시키치 , 사토우 코우이치 , 카토 카즈오 , 나이토 카즈오 , 이노우에 토시아키 , 키지마 카즈오 ,요네야마 토요히로 각 분들 입니다.

어느날 ( 지금 부터 直心影流  ` 法定之型 ` 을 打치겠다. 각자는 확실히 보아 두도록 ... ! ) 라고 담당강사의 하라요시 사범으로 부터 이야기가 있었고 , 전원이 앉아 있는 상태에서 연무演武가 행해 졌다.

( 타니구치 선생님 , 하라 선생님 , 타구치 선생님 세분이 연무를 해 주셨습니다. 이것이 제가 `法定` 호우죠 와 만난 최초 였습니다. 그때의 인상 입니까 ?  어떻게 표현 하면 좋을까..... 가래 나무 활弓과 같이 팽팽이 당겨진 기합氣合 이랄까 , 숨도 쉴수 없는 정념正念의 연속 이라고 할까 , 삼매三昧 라고 할까 , 어쨌든 복부에 징~울리는 것이 있었습니다.)

호우죠法定가 가지는 무게감 , 혹은 고류古流의 섬뜩함 , 강함 , 뜨거움 , 아마 그러한 것이지 않았을까

( 그랬을 지도 모릅니다.)

설명하기 힘든 감동 , 그것이 히라노 교사의 마음을 찌르고 움직여 , 우치하라 內原  행의 계기가 되었다.

( 그것도 있습니다만 , 하나 더 큰 이유는 당시 명예사범을 하신 오가와 선생님의 ` 德 ` 에 대한 경애의 마음 입니다. 선생님은 구름 위의 존재 이셨습니다. 그러나 그 `德`에 어떻게 해서든 닿아 보고 싶다. 그런 마음이 있었던 것 입니다.)

마음이 정해지면 행동은 빨랐다. 쇼와 51(1977)년 여름 , 날아가듯 우치하라 행을 실행하고 , 이후는 매년 정례가 되었다.

우치하라 행 , 이것은 일본국민 고등학교를 전신으로 하는 일본 농업실천학원 ( 농업에 종사하는 인물의 양성을 목적으로 하는 학교법인 , 교육방침으로는 농업실습 이외에 , 검도 , 유도 , 그리고 야마다 지로키치 山田次郞吉 에게 사사한 카토 칸지 교장이 수행하는 직심영류법정지형 直心影流法定之型을 정과로 하고 , 검도는 한달에 한 번 , 오가와 츄타로 선생님이 지도 하고 있었다)  주최의 武修會에 참가 하는 것으로 , 현재는 3대째인 카토 타츠히토 회장이 이어 받아 , 3박4일의 일정으로 개최되고 있는데 , 히라노 교사가 다니기 시작했을 당시는 5박6일 이었다고 한다.

( 그리고 , 지금은 하절기 입니다만 , 옛날엔 동절기도 있었습니다.)

武修會의 하루는 , 아침 6시 부터 1시간의 좌선 , 9시 부터 12시까지 와 오후 2시 부터 5시 까지가 `호우죠`法定의 케이코 , 그리고 검도는 5시 부터 1시간으로 되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