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고단자의 수행 ......... 이치카와 하지메 (一川 一)

" 시합을 하게 되면서는 , 케이코 장부에 시합 횟수도 기록 하도록 했습니다. 날짜와 상대의 이름 , 단위를 써 두는 것 입니다. 아버지는 ( 1000회 시합이 지나면 조금은 승부감이 나올 거다 ) 라고 말씀 하셨습니다만 , 딱 그 말씀 그대로 입니다."

 

( 아버지와는 검도를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함께 스부리素振 케이코를 하였습니다. 집 마당이거나 , 비가 오면 마루에서 하거나 했습니다. 고등학생이 되어서는 케이코 장부를 건네 받고 , 빠지지 않고 기록 하도록 말씀 하셨습니다.)

이치카와 교사의 `아버지` 는  쿠마모토현 경찰과 쿠마코토 무도관의 사범을 지내시고 , 또한 노다파野田派 이천일류二天一流의 제 17대를 이은 이치카와 카쿠지一川格治 범사이다.

( 스부리는 언제 부터인가 하루 천번으로 정해져 있어서 , 그것이 저에게는 고통이어서 , 우물쭈물 하고 있으면 ` 어이 , 어서 하지 못하느냐 ! ` 라고 아버지에게 온 종일 재촉 당했습니다. ` ~센카이` 는 쿠마모토 사투리로 ` ~하거라` 입니다만 , 아버지는 `센카이` 를  `千回` 로 대신 하셨습니다. 그것을 알고 있었던 만큼 , 싫어도 방법이 없었습니다.)

묵묵히 천번을 계속 후렸다....

( 라고 해도 , 같은 후리기를 하는 것은 아닙니다. 메뉴가 있습니다. 상하 후리기를 시작으로 , 좌우 후리기 , 스부리 , 나아가 , 예를 들면 스쳐올려 머리 , 어깨 메고 손목 , 한손 머리 라는 다양한 기술을 상정하고 후립니다. 그것도 무거은 목검으로 하고 , 그 다음은 가벼운 목검이나 죽도로 하는 것 입니다. 스쳐올려 머리 등은 아버지에게 몇번이나 맞았는지 모릅니다. ^^)

맞았다 ......라고 하는 것은 , 대면한 형태로 했었다.

( 그렇습니다. 어떤 스부리도 카마에를 한 상태에서 실제의 대인 동작으로 후리는 것 입니다. 상하 후리기 이면 , 아버지의 머리를 칠 수 있게 크게 후린다. 스쳐올려 머리도 같습니다. 아버지가 저의 머리를 치고 , 그것을 스쳐올려 제가 머리를 친다 . 맞았다 라고 하는 것은 , 그때 제대로 스쳐 올리지 못해 `퐁` 하고 아버지에게 머리를 맞았다는 것 입니다.

^^ 되받아 머리 , 찌름 , 한 손 기술 , 칼끝을 다루는 법도 했습니다. 카마에 하고 칼끝을 , 앞 ,뒤 ,앞, 뒤 라는 식으로 하는 것 입니다. `테노우치` 의 연습은 빠르면 빠를 수록 좋다는 것이 아버지의 생각 이었습니다. 고등학생이 되어서는 건네 받은 케이코 장부에 케이코 횟수와 별도로 그 날의 스부리의 횟수도 기록 하도록 했습니다.)

그 케이코 장부 말인데 , 어떤 식으로 기록 했던 것 일까

( 케이코 한 상대의 이름과 단위를 쓰는 것 뿐 이었습니다. 단위는 초단 이상 입니다. 기록하는 것을 잊어버리는 일도 종종 있어서 , 나중에 떠올리며 기록 하기도 했습니다. 며칠인가 지나면 , 아버지는 ` 지금 몇번째냐 ` 물으시고 , 케이코 장부를 들고 가면 , ` 오 , 잘 하고 있구나 , 이 oo 선생님에게 부탁드려 보니 어땠니 ?  `이랬습니다` ` 그 선생님의 이러한 점은 배우지 않으면 안된다` 라는 등의 검도에 관한 여러가지 이야기를 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그때를 기점으로 부자父子 지간의 주고 받음이 없어졌다고 한다.

( 제가 , 저 스스로 어디라도 케이코에 가게 되면서 부터 입니다. 아버지는 , 흥미를 일으키기 위해 저를 칭찬하고 먹잇감을 던지고 , 또 칭찬하고 먹잇감을 던지고 있었던 것 입니다.그리고 제가 `덥썩` 물고 늘어지기 시작한다 . 결국 저 자신의 속에서 검도에 대한 흥미가 진짜가 되었다. 그러면 , 낚은 고기에게 먹이는 주지 않는다 , 이 앞으로는 자신의 수행이다 , 라는 것 입니다. 그리고 나서는 ` 이제 몇 번이 되었을까 ` 라고 물어 오실 뿐 이었습니다. 대학國士館을 졸업하고 쿠마모토에 돌아 와서도 쭉~ 그랬습니다. 20대 중반 이었을 까요 , 저는 시합에 나가도 잘 이기지도 못하고 , 케이코도 이해 하지 못하게 되어 버렸습니다. 그래서 아버지께 ` 아무리 해도 이길 수가 없는데.....` 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니까 아버지는 ` 시합 횟수가 몇번 이냐 ? ` 라고 물어 오시고 , 제가 ` 곧 600회 가 됩니다 ` 라고 대답하자 ` 1000회를 목표로 하거라 , 1000회가 지나면 조금은 승부감이 나오는 법이다 ` 라고 , 그 말씀 대로 였습니다. 아버지가 말씀하신 대로 작은 대회에도 애써 나가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1000회 로 가까워 지면서 승률이 50퍼센트가 되었습니다. 그 후로는 저 자신도 믿지 못 할 정도로 승률이 올라 갔습니다.)

케이코 수가 아니라 , 시합 횟수가 1000회 ?

( 그렇습니다. 시합을 하게 되면서 , 케이코와 마찬 가지로 시합 횟수도 케이코 장부에 기록 했습니다. 800회 정도가 되었을 때라고 생각 합니다만 , 너무 계속 지기만 해서 아버지께 ` 오늘은 어땠습니까 ` 라고 물어 본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도 아버지는 ` 으음 , 좋았어 ` 라고 말 할 뿐 이었습니다. ` 어디가 좋았습니까 ` 라고 거듭 물어봐도 ` 카마에가 좋았다 , 기합이 좋았다 ` 라는 말 밖에는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저는 기술적인 면을 얘기해 주셨으면 했지만 , 아버지는 그런 말은 일절 없었습니다. 항상 그랬습니다. 자연히 , 자기 스스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시합을 머리 속에서 쫓으면서 , 그때는 이랬어야 하는데 , 그 상황은 이렇게 한 것이 잘못 이었다 라는 등 시합을 할때 마다 반성할 점이 다음 또 다음으로 나오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통산 1000회 시합이 되려고 할 즈음 , 그러한 희미한 반성이 결실이 되었습니다.)

 세는 것은 간단하지만 , 그것 만으로는 신체에 새겨넣을 수 없고 , 자신의 것으로 확실히 몸에 붙지 않는다 .....

( 네 , 그런 것 입니다. 그리고 하나 더 , 사고를 깊이하여 , 자신의 힘으로 자신의 검도를 생각해 가는 자세의 소중함 , 다시 말해 검도수행은 독립독보 獨立獨步의 길이고 , 이제 부터의 긴 여정을 자신의 힘으로 열고 헤쳐가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을 가르치고 있었습니다. 케이코 장부는 아버지의 지도의 근본에 있었습니다. 자신도 기록하고 , 저에게도 기록하게 하면서 , 아주 느린 템포로 , 그러나 일직선으로 걸어 가기 위한 지도를 저에게 베푸셨던 것 입니다. 제가 아버지의 의도 대로 나아가고 있는지 어떤지는 모릅니다. 단 , 수행자세의 있어야만 할 모습에 생각이 미치게 된 것은 큰 것이라고 생각 하고 있습니다. 케이코 장부는 지금도 쓰고 있고 , 약 44000 회 가 됩니다. 아버지가 돌아 가시고 나서는 검도 形을 친 횟수나 이천일류二天一流 의 형의 연무 횟수 , 짚단을 벤 횟수도 기록 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이것들의 숫자가 가지는 의미는 아직 모르지만 , 몇년이 지난 후에는 하나의 단계가 보여 질 것 같은 느낌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