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고단자의 수행 ...... 니시카와 키요노리

" 타돌의 스피드나 움직임의 재빠름은 , 젊은 사람에게는 상대가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예법을 제대로 하고 시합에 임하는 시세를 나타내고 , 거기서 부터 승부에 들어 가도록 했습니다."

 

니시카와 교사는 전 일본선수권에 16회 출전하고 , 3번의 우승에 빛나고 있다. 2번째 우승은 헤이세이 원년(1989) 이었다. 다음 해 전년도 우승자로써 출전 한 뒤 ,12월 오른 손 수술을 하고 , 헤이세이 4년에 제대로 복귀를 할 수 있었다.

( 특훈생을 물러나 , 이제 부터 년 1회의 전 일본선수권에 출전 이라는 긴장을 추구하며 가자 라고 생각했던 마침 그때 오른 손의 고장 이었습니다. 수술 후 입니다만 , 일년 반 이라는 기간 동안 전혀 케이코는 불가능 했고 , 오로지 달리기나 왼손 소부리를 했습니다. 전 일본선수권에 대한 몰입은 잃지 않고 있었기 때문에 , 우선 다리와 손은 약해지지 않도록 움직여 두자고 생각했기 때문 입니다. `미토리 케이코`도 하였습니다. 자신과 비슷한 타입의 사람의 뒤에 가서 그 사람을 자신이라 바꿔 생각하고 , 세메 라든가 타돌 기회를 보는 것 입니다. 좋아 , 세메해서 나왔다 , 여기다 , 간다 ...응...? 안가네 ..왜 그러지 . 상대가 온다 , 거기다 , 손목이다 . 아깝다 ....... 그런 식입니다. 집중하면 마치 케이코를 하고 있는 기분이 됩니다.)

복귀를 위해 가능한 한 노력을 했다.

( 그렇습니다. 그래도 역시 불안은 있었습니다. 그 만큼 일년 반 만에 호면을 쓰고 케이코 했을때는 , 자신의 힘이 그 정도로  떨어지지 않은 것을 알고 기뻤었지요. 이 정도면 전 일본 선수권에의 도전도 어떻게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만약 쇠약해 졌다는 것을 자각 했다면...... .

( 아마 도전은 그만 두었겟지요.  그러나 , 약해져 있지는 않았다. 노력의 커다란 힘을 깊이 깊이 생각 했습니다. 노력은 반드시 결실을 맺는다 , 오래 전 부터 말 해져온  교훈 입니다만 , 저 에게는 이상하리 만치 신선했고 , 기분 좋은 울림이 있었습니다.)

헤이세이 4년(1992) 9월 , 니시카와 교사는 동경도 예선에 출전했다. 본선에의 진출은 놓쳤지만 , 검도의 감촉은 나쁘지 않았다 라고 한다. 덤으로 올해 쿠마모토 에서 열린 7단 대회에서도 2번째 우승을 장식 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 다음해 , 니시카와 선생은 3년만에 전 일본선수권의 싸움의 장소로 돌아 왔다.

( 2회전 패배로 물러 났습니다만 , 충분히 만족할 만한 것 이었습니다. 이런 시합을 하자고 생각하고 임 했고 , 그게 일단 되었습니다. 말하자면 시합에 대한 ` 의식혁명 ` 이랄까요 (웃음). 케이코를 재개하면서 생각했던 것 입니다. 오른 손 수술후 , 지력이 떨어지는 것은 느끼지 못했다 하더라도 , 연령에서 오는 쇠약은 역시 있습니다. 타돌의 스피드나 신속함은 젊은 사람에게는 상대가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시합에 임하는 자세 라든가 , 마음을 어떻게 먹는가 라든가 , 우선 그러한 부분에서 부터 승부에 들어가게 한 셈이지요.

예를 들어 호면을 쓸 때 입니다만 , 호면을 가지고 지정된 곳으로 갑니다. 가볍게 목례하고 앉습니다. 만약 제가 먼저 왔다면 , 앉은 채로 상대가 오기를 기다립니다. 상대와 마주 보고 앉게 되면 , 제대로 눈을 마추고 좌례를 하고 분위기를 바꾸고 고개를 들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라고 하는 기분을 확실히 표현 합니다.)

예법에서 부터 승부에 들어가고 , 예법으로 승부했다...... .

( 그렇습니다. 이것 만은 지지 않는다 , 그런 마음을 강하게 가지고 , 확실히 당당하게 하도록 했습니다. 막상 시합개시 라고 해도 같은 모습 입니다. 호면 면금을 넘어 상대를 제대로 보고 , 그대로 개시선으로 나아가서 , 천천히 존거 하고 , 일어난다. 승부가 결정되어 물러 날 때도 변함 없이 한다. 노력해서 그런 풍으로 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대회에서 만 그런 식으로 한 것은 아닙니다. 보통의 케이코에서도 마음에 두고 , 신체로 기억하고 자연스럽게 되게끔 했던 것 입니다. )

예법은 세메나 타돌과는 달라서 승부에 직접 관계 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검도의 또 하나의 소중한 요소이고 본원적인 것 이기도 하다. 스피드나 움직임에서는 젊은 사람들에게 이길수는 없다는 니시카와 교사라고 하지만 그 정도로 큰 차이가 있다고는 생각 되어 지지 않는다. 그것도 , 원래 부터 세메나 기술의 산뜻함과 매끈함은 발군의 기량이다.

충분히 승부를 낼 수 있을 터 이다. 그럼에도 불구 하고 예법을 확실히 하고 , 그것으로 승부 하려고 한다는 것은 , 검도의 전체적인 결정체로 상대를 대하겠다는 것인가.

( 예, 결국 그런 의식입니다. 이것이 의외로 저 에게는 큰 힘이 되었습니다. 지금 까지 없었던 氣의 충실함을 느낄수 있었습니다. 禮 를 교환 한다는 것은 形입니다. 그러나 마음 깊은 곳에서 저절로 나올때는 形이 아닙니다. 자신의 마음가짐에 강하게 작용하고 , 긴장 시켜 줍니다. 그리고 氣의 충실 , 기백 과도 이어 집니다. 당연 세메는 압력을 더하게 되고 기술도 살아 나게 된다 는 것 입니다.)

다음해 헤이세이 6년(1994) 니시카와 교사는 3번째 전일본선수권을 제패했다. 예법과 검도 기술의 결정체가 한 시합 한 시합 발휘 되어 ,그 결과가 낳은 우승 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