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리를 생활에...(2)

 

中墨をはずすな (一 刀 流 )

 

*중묵中墨에 대해서는 「나의 건강과 검도」의 항목에서도 그 본질적인 내용을 썼지만 , 우리들

생활에 있어서 중요한 것으로 , 여기에서는 다른 측면으로 부터 중묵의 필요성을 생각 해 보고 싶다.

최근의 검도 시합에서는 「凄味가 없다」「眞劍味가 부족하다」라고 엄격히 비난하기만 할 뿐 ,중요한

것은 마음의 밀고 밀리는 세메도 칼끝의 공방도 없기 때문이다.

예로부터 검도는 「쳐서 이기는 것이 아니다, 이기고 그 후에 치는 것」이라는 가르침이 있습니다만

이것 이야말로 「中墨의 겨누기」「마음의 승부」의 중요함을 가르친 것이지요.

상대와 마주하면 우선은 상대의 중묵을 제압하고 그 중심을 세메한다.

상대도 그렇게는 안된다 하며 반격해 온다.

그 공방의 일진 일퇴에 불꽃이 튀고 , 그 일격 일돌一擊一突에 중묵을 빼앗는 태도太刀의 `사에`가 생겨

나고 섬뜩한 처미凄味가 느껴지는 법 입니다.

이와 같이 검도의 케이코 중에 상대의 중묵을 빼앗기는 상당히 어렵지만 , 인생에 있어서 행동의 중묵을

벗어나지 않는 것은 한층 더 어려운 것이다. 사회생활 속에서는 여러가지 위압이 있고 , 유악誘惡이 있고

복잡한 이해관계가 엮여지게 됩니다. 그 변검變劍 , 난검難劍을 어떻게 처리 할 것인가 ?

어떠한 유혹과 나쁜 칼에도 동動하지 말고 , 오른쪽으로 치우치지 말고 , 왼쪽으로 기울지도 말고 ,항상

중정中正의 행동을 취하는 것은 실로 어려운 것이지만 , 그것을 바르게 극복하고 중묵을 지키고 나아가

는 것이 인간형성이고 , 인간 수행이기도 하다.

최근은 학교교육에 있어서도 중묵을 벗어나서는 안 될 「중정의 교육」이라고 하는 것이 진정 어려워 진

것 같다.

「교육은 나라의 근본이 된다」라고 하지만 , 그 근본이 사라지고 뭐든지 되는 대로 놓아버리고 있다.

선생님을 추방하거나 학급이 무너지는 등은 일상다반사 이고 , 국기 게양을 하지 말라 던가 졸업식에 애

국가를 부르지 말라 던가 하는 단체 들도 있다.

모두가 교육의 중묵을 짓밟는 무리들로 , 그러한 제 정신이 아닌 교육을 해서는 일본이 곤란하고 일본정

신의 중묵이 무너진다.

도장에서도 사회에서도 인륜人倫의 중묵을 벗어나지 않는 것이 인간궁극의 철칙이다. 하물며 다음세대

의 아이들을 키우는 학교에서는 말 할 필요도 없지 않겠는가.

「남자가 문밖을 나서면 일곱의 적敵 이 있다」 라고 말하는 것 처럼 , 일단 집을 나서면 칠인칠색의 유

혹과 감언이 떡하니 기다리고 있다. 그러한 여러 난적복병을 어떻게 훌륭하게 제압하고 어떻게 「중정의

도 中正の道 」를 활보해 갈 것인가가 인생의 화도花道이고 , 검도인이 걸어야 할 「중묵의 대도中墨의

大道」라고 불러야 할 것이다.

                                                                                                        이노우에 마사타카  《잔심》

 

일도류一刀流: 이토잇토우사이 카게히사( 伊藤一刀斎景久 1550~1653 )가 카네마키지자이 미치이에

(鐘捲自斎通家 ?~?) 에게 중조류中條流를 배우고 , 본인의 생각과 노력을 더해서 창시한 류의流儀 ,

성립한 것은 16세기 후반 , 치는 것과 동시에 받아내고 , 빗겨나게 함과 동시에 벤다 라고 하는 검리劍理

그때까지의 검도에는 없었던 새로움이 있었다. 이 류의流儀로 부터는 오노지로우에몬 타다아키

小野次郎右衛門忠明(1565~1628) 의 소야파小野派외에도 많은 분파가 생겨나 후세에 전해 지고

있는 , 현대검도에서 무엇보다고 강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류의流儀라 하겠다.

 

*중묵中墨`나카즈미`: 중심선을 말한다. 검도에서 말하자면 자신의 중심中心과 상대의 중심선中心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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