五輪書오륜서 탐구...火의 卷(23)

 

4 . 「底を抜く 속(적의 속마음)을 뚫는다」 는 것

 

속을 뚫는다는 것은 적과 싸울때 그 도道의 우월을 가지고 표면은 이겼다고 보여도 , 적이 적의敵意를

끊지 않고 있는데 표면에서 졌다해도 마음 속에서는 지지 않는 것이 있고 , 그 문제에 있어서는 , 내가

갑자기 바뀐 마음이 되어 적의 마음을 끊게하고 , 적이 마음의 바닥으로 부터 졌다는 기분되는 것을

끝까지 지켜 볼 필요가 있다 는 것이다. 이 바닥을 꿰뚫어 보는 것 , 칼로도 뚫고 , 몸으로도 뚫고 , 마음

으로도 뚫는 일이 있지만 , 하나의 방법으로는 수습이 될 리가 없다.

속으로 부터 무너진 것은 , 주의를 남겨 둘 것 까지도 없다. 그렇지 않을 때는 주의를 남겨두도록 한다.

적의敵意를 남기는 것 같아서는 적은 무너지기 어려울 것이다.

많고 적은 병법兵法에서도 속을 뚫는 것은 아주 숙련된 단련이 없으면 안된다.

 

이겼다 졌다고 하는 것은 , 심판이 정하고 관객에게 보인다 는 식이 , 실은 드물다는 것을 알아차리지

않으면 안된다. 원래 인간이 싸우는 것은 이겼다 졌다를 겨루기 위함이 아니다. 그것은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 그 진정한 목적은 상대에게 나의 의지를 강요하는 것에 있다. 나의 의지에 저항 해야 만이 , 상

대는 적인 것이고 , 나의 의지를 수용해 주기만 한다면 실력행사를 이용해서 그것을 강요 할 것 까지도

없다. 따라서 , 싸움은 실력행사로 무리하게 나의 의지를 강요하는 것에 의해서 , 어쨌든 나의 의지를 저

항 없이 수용하도록 하게만 하면 된다. 따라서 , 능숙하고 쉽고 빠른 싸움은 적을 내편으로 하는 것이고

적 그 자체를 섬멸하거나 , 적의 전력을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 상대의 적의敵意 만을 , 적어도 저항심

만을 소멸시켜서 적과 적의 전력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버리는 것이다. 그러니 적의 적의敵意나 저항

심만 소멸시킬 수 있다면 적의 전력은 가능한 한 잔존해 있는 것이 바람직 하다. 그러나 실제의 전투가

되면 , 어느 쪽도 서로 소모하지 않을 수가 없다. 제 3자의 좋은 표적이 되어 버린다. 그러니 싸우지 않

고 이기는 것이 전학戰學의 절대적인 이상 이다.

가능한 한 싸우지 않게 해서 이기기 위해서는 , 어쨌든 빨리 「속을 꿰뚫다」 여야 할 것이다. 역으로 아

무리 적을 섬멸하고 , 적의 전력을 파괴해도 적의 적의나 저항심을 소멸시킬 수 없다면 나의 의지를 강

요한다 고 하는 최대의 목적 달성은 위험하다. 칼날 하나의 테러로도 형세가 역전 해버리는 경우가 있

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단 싹이 터버린 적의敵意를 소멸 시키는 것은 극히 어렵다. 긍적적인 사람은 이

야기 하면 안다 고 말할지도 모르지만 , 현실에는 거기에 이미 인식의 어긋남이 일어나 있고 제아무리

괜찮다고 생각하고 마음을 다해도 , 그사이에 나쁘게 밖에는 해석되지 않는다. 많은 시간을 쓴다면 , 상

대가 생각을 다르게 할지는 모르지만 기한이 있는 계획에 있어서는 그러한 낭창한 수단은 목적인 계획

그 자체를 파괴해 버린다. 따라서 여기에서는 현실적으로는 적의를 소멸시키는 것이 아니라 , 단지 저

항심만을 소멸시키고 나의 의지를 관철시키는 것이 된다.

이런한 상황까지 이르러서 적의가 있는 상대의 저항심을 소멸시키기 위해서는 세가지의 방법이 있다.

우선은 저항이 불가능 하다는 것을 알아차리게 하는 것 , 다음으로 저항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실제로

알게 하는 것 , 마지막으로 현실에서 상대의 전력을 파괴하고 저항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것

이 각각 마음으로 , 몸으로 , 칼로써 적의 심부를 뚫는 것일 것이다. 적에게 이렇게 하면 , 저렇게 하면 ,

이라고 말할 수 있는 여지를 남기지 말고 , 어떻게 해도 이제는 `안된다` 라고 믿어버리게 만드는 것 , 이

것이 속을 뚫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상대만 믿으면 되는 것이고 , 진실일 필요는 전혀 없다. 무엇보

다 믿게 만든것 만으로는 후에 적이 진실을 알게 된 때에 번거러워 질지는 모른다. 그러나 , 거기까지

완전히 제압해 두면 문제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