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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도/검도소사劍道小史

검도소사劍道小史 .......검도의 흐름

 

4 . ` 一本 ` 의 전개

 

다이쇼大正(1912~1926)로 부터 쇼와昭和(1926~1989)에 걸쳐 , 격검擊劍은 대학이나 고등전문학교의 학생들에 의해 시합을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었다. 그렇게 시합이 활황을 구가하는 중에 , 니시쿠보 히로미치(西久保弘道1863-1930)는 무덕회武德會를 대표해서 ` 검도본래의 목적은 나 자신의 육체를 완전히 단련하고 나 자신의 정신을 충분히 연마한다 ` 라는 것에 있다고 하고 , ` 武의 명칭 `을 ` 술術 `에서 `도道 ` 로 해야한다고 주장하고 다이쇼 8년 (1919) , 종래의 명칭이던 ` 劍術 ,擊劍 ` 을 ` 劍道 ` 로 변경하고 , 경기화에 대한 경종을 울렸다. 그 영향도 있어서 다이쇼 15년 (1926) , 문부성은 학교체육에 있어서의 명칭을 ` 劍道 ` 로 했다.

당시 시합에서의 ` 一本 ` 은 심판의 주관적인 판단에 맡겨져 있었는데 ,쇼와 2년 (1927) 에 대일본무덕회의 ` 검도시합심판규정 ` 에서  ` 타돌打突은 충실한 기세氣勢 와 , 칼날과 근筋의 바른 기술業 , 적법한 자세姿勢 , 이를 하는것을 유효有効 라고 한다 ` 라고 하는 세가지의 조건이 명문화 되어 , 이 생각에 기초하여 많은 시합이 실시되어 지게 되었다. 쇼와에 실시되어진 세번의 천람시합天覽試合( 천황이 관전하는 무도나 스포츠의 경기시합 )에서 , 심판의 3인제도입 등을 포함한 ` 一本 ` 의 평가내용도 의논되었다. 이 사이 문부성은 쇼와 6년 (1931)에 검도를 중등학교의 정식과목 필수로 인정하고 , 쇼와 11년 (1936) 에는 중등학교의 ` 검도교수 요목 ` 을 제정했다. 이 때 , 매 학년의 교수지침의 명시와 지도법의 정비에 의해 검도인구가 비약적으로 증가했다. 전쟁국면(2차세계대전)이 다가오면서 실전성을 강조하는 움직임이 나오기도 하지만 , 전황戰況이 악화된 쇼와 19년 (1944) 이후는 검도의 시합과 케이코가 실시되어 질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쇼와 20년 (1945) 의 패전 후 연합국총사령부에 의해 학교무도武道는 전면금지 되어지고 ,  동 24년 (1949) , 묵인되어 졌던 경찰검도도 금지 되었다. 그러나 , 검도부흥의 기운이 보이기 시작해서 , 쇼와 25년 (1950)에 전일본 # `시나이撓い죽도경기연맹`이 결성 되어지고 , 새로운 스포츠로서 죽도경기가 실시되게 되어지면서 , 학교 교육교재로서 채용되게 된다. 그후 쇼와 27년 (1952) 전일본 검도연맹의 발족을 보았다. 쇼와 29년 (1954) 에는 , 양 연맹은 전일본검도연맹으로 일체화 했다. 이듬해 30년 (1955)에는 일본체육협회의 가맹을 인정받고 , 제 10회 국민체육대회에 검도가 스포츠의 정식종목으로 참가했다. 쇼와 33년 (1958) 에 고시 되어진 중학교학습지도 요령에서는 ` 격기格技 ` 로서 학교교육에서 위치를 잡게되고 , 그 후 헤이세이平成 원년 (1989) 에는 ` 武道 ` 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검도 부활후 애호가愛好者는 계속 증가해서 유소년과 여성 그리고 해외에까지 보급했다. 쇼와 45년 (1970) 에는 국제검도연맹이 설립되고 , 제1회 세계선수권대회가 개최되기에 이르면서 , 검도는 일본을 대표하는 전통문화로서 국제적으로 인지 되게 되었다. 이러는 동안 , 검도는 경기를 중심으로 발전을 계속해서 ` 검도시합 , 심판규정 ` 의 충실도 기할수 있었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 경기화가 진행됨에 따른 치우친 승리지상주의勝利至上主義 적인 경향이 강해져서 , 이것을 시정하기위해 검도본래의 모습과 방향성을 나타내는 의미로 쇼와 50년 (1975) 에 ` 劍道의 理念 `이 제정 되었다. 그 후에 그것을 이어받아 ` 검도시합 , 심판규칙 ` 의 수정과 개정이 이루어져 , ` 一本 ` 은 ` 충실充實한 기세氣勢 , 적정適正한 자세姿勢로 , 죽도의 타돌부打突部로 타돌부위打突部位를 칼날과 칼근이刃筋 바르게 타돌하고 잔심残心이 있는 것으로 한다 ` ( 검도시합 심판규칙 제12조 ) 로서 명문화 되어진 것이다.

 

# `시나이` 撓い 는 탄력이 있어서 낭창하게 휜다는 의미를 가진 `시나우` 撓う의 명사형에 대나무 竹 이 붙어서 `撓い竹` 로 죽도를 만드는 대나무를 가르키기도 하고 죽도竹刀 그 자체를 말 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