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검도의 역사...(55)

 

7 . 생애 검도

 

생애에 걸친 수행

 

다음의 문장은 쇼와昭和의 검성劍聖이라 불리는 `모찌다 모리지持田盛二` 범사의 말 입니다.

「나는 검도의 기초를 몸으로 익히는데 50년이 걸렸다. 나의 검도는 50을 넘기면서 진정한 수행에 들어갔다. 마음으로 검도를 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60이 되면서 발과 허리가 약해진다. 이 약함을 보완하는 것이 마음이다. 마음을 움직여서 약점을 강하게 하려고 노력했다. 70이 되면서 신체전체가 약해진다. 이번에는 마음을 움직이지 않는 수행을 했다. 마음이 움직이지 않게되면 상대의 마음이 이 쪽의 거울에 비치게 된다. 마음을 고요히 움직여지지 않도록 노력했다. 80이 되어서 마음은 움직이지 않게 되었다. 그렇지만 때때로 잡념이 들어온다. 마음의 안에 잡념이 들어오지 않도록 수행하고 있다.」

실로 생애에 걸친 수행입니다.

원래가 검도에는 , 검술의 시대로 부터 이러한 성질이 오래전 부터 갖추어져 있었습니다.

지금까지 몇 번이고 다루어 왔던 `미야모토 무사시`는 『오륜서』 에서 30세를 넘기고서 진정한 수행에 들어갔고 검의 극의를 얻은것은 그의 나이 50세 때 였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또한 , 막부말로 부터 메이지를 살아간 검술가 , `야마오카 텟슈`도 죽음을 목전에 둔 시점까지도 검劍과 선禪과 서書의 수행에 몰입했다고 전해집니다.

 

나이가 들어도 한층 강한 검

 

생애를 통해서 고령이 되어도 수행을 계속한 검술가들은 , 단순히 나이를 먹어도 케이코를 계속했다는 것 만이 아니라 , 진정으로 강했다고 생각합니다.

신토류神道流의 창시자였던 `이이자사 쵸이` 등은 , 횟수 나이로 102세까지 살았다고 합니다. 이것의 사실로서의 신빙성에 대해서는 신중할 필요가 있겠습니다만 , 장수 했다는 것만은 확실합니다. 이 시대의 검호는 , 세상에 이름이 알려지면 알려질 수록 솜씨를 겨루고자 바라는 검객들로 부터 목숨을 빼앗기는 일이 많았습니다. 장수 할수 있었다는 것은 , 다시말해 고령까지 강했다는 것 입니다.

당시 , 신카게류新陰流의 유조로서 이름을 날리던 `카미이즈미 이세노 카미` 가 한창 잘나가던 `야규 무네요시` 와 시합을 해서 이긴것은 , 37살의 젊은 무네요시에 대적한 카미이즈미가 56살의 시기 입니다.

또 , 시대는 조금 내려가서 , `야규 무네요시`가 후에 토쿠가와 막부를 열어 천하통일을 이룩한 `토쿠가와 이에야스` 의 요구에 응해서 실제로 대적한 것이 , 이에야스 53세 , 무네요시의 나이 68세 때 입니다.

`이이자사 쵸이`에 비하자면 젊은 듯이 보이기도 합니다만 , 어느 것이나 당시로서는 상당한 고령이 되고나서의 입합入合입니다.

이러한 시합을 한다는 것 자체가 양자 모두 솜씨에 자신이 있었다는 것 입니다.

검술에는 아무래도 이러한 고령이 되어도 젊은 사람들에게 지지않는 실력을 유지하는 특징이 있습니다. 이것은 현재의 검도에도 통하는 것 입니다만 , 그 이유에 대해서는 솔직히 말씀드리면 저 자신도 아직 알지 못합니다. 탐구 중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