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검도의 역사...(47)

 

`쿠사나기 츠루기草薙剣` 에 대한 주목

 

여기까지는 `쿠사나기 츠루기`에 특화된 것이 아니라 삼종三種의 신기神器 전체로서의 이야기 입니다만 다음의 사건을 경계로 양상이 바뀝니다.

헤이케平家는 탄노우라壇の浦의 합전에서 멸망 합니다. 그 모습은 『헤이케 모노가타리平家物語』 속에서 최대의 클라이 막스로 그려지고 있습니다.

이 싸움은 해전 입니다. 안토쿠安徳 천황은 삼종의 신기를 가지고 , `니이도노二位殿` , 타이라 키요모리의 처인 토키코時子 와 선상에 있습니다. 헤이케의 패배가 결정적이 되자 , 니이도노는 안토쿠 천황에게 「파도의 아래에도 왕궁이 있사옵니다」 라고 말하고 , 쿠사나기 츠루기를 허리에 차고 , 곡옥을 옆구리에 넣고 , 안토쿠 천황을  안고 함께 바다로 몸을 던집니다. 곡옥은 들어있던 상자채로 떠올라서 무사했습니다만 , 쿠사나기 츠루기는 그대로 바다에 잠겨서 행방을 알 수 없게 됩니다.

보검을 잃어버리고 나서는 , 이것이 사회에서 대단히 큰 문제가 됩니다. 보검이 전해지지 않는 천황은 정통성이 있는 천황이 아니라는 것까지 말해지는 지경이 됩니다.

쿠사나기 츠루기는 잃어버리고 나서부터 보다 더 주목을 더해 갑니다.

 

 

혼자 걸어다니는 쿠사나기 츠루기

 

쿠사나기 츠루기의 그 뒤에 관해 『타이헤이키 太平記』에 재미난 이야기가 전해 집니다. 안토쿠 천황과 함께 해저에 잠겨버린 보검이 나왔다는 소동 입니다.

이세伊勢의 나라의 엔죠円成라는 법사가 바다에서 반짝이는 것을 보고 이것을 끌어 올렸는데 , 그것은 검 이었습니다. 물건에 붙어산다는 작은 동자가 말하기를 , 이것은 오랫동안 행방을 알 수 없었던 쿠사나기 츠루기 라고 말합니다.  엔죠는 상경해서 당시의 조정의 중신 이었던 `히노 스케아키라日野資明` 라는 인물에게 이 검을 맡깁니다.

`스케아키라`는 이 검이 진짜인 `쿠사나기 츠루기` 인가 아닌가를 지인인 신승에게 21일간 건네주고 기도를 부탁해서 , 그 사이 어느 일정한 지위이상의 인물의 꿈에 이 검의 일이 나타나는가 아닌가 에 따라서 확인 하고자 합니다. 그 결과 , 그 기도의 마지막 날에 어떤 사람의 꿈에 이 검이 진짜인 쿠사나기 츠루기 라고 알려주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스케아키라`는 코곤상황光嚴上皇에게 이 사실을 보고하고 , 경사스럽게도 보검은 원래의 위치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여기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당시 , `스케아키라`와 조정을 양분하는 `보우죠 츠네아키坊城經顯`라는 가신이 있었습니다. 두 영웅이 나란히 설 수 없는 것이 세상의 이치 인지라 , 이 두 인물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츠네아키`는 `스케아키라`의 공적을 달갑게 여기지 않았고 , 문제의 검은 가짜라고 주장합니다. 그러자 상황上皇은 , 그대로 이 의견을 받아드려 보검을 돌려주고 맙니다.

상당히 재미 있는 이야기 입니다만 , 그러면 보검 `쿠사나기 츠루기`는 대체 무엇 이었을까요.

겐페이源平 전쟁의 당시에는 , 그렇게도 삼종의 신기 그 자체를 가지는 것에 집요하게 집착했음에도 불구하고 , 여기에서 쿠사나기 츠루기가 진짜인가 아닌가 그 진위가 조정내의 두 인물의 사이가 나쁘다는 것 만으로 간단히 뒤집혀 질 정도로 , 이 검 그 자체에 대한 의식은 낮아져 있었습니다.

이것은 어떠한 의미를 가지는가 하면 , 이미 이 시대는 천황天皇의 지위를 상징하는 `쿠사나기 츠루기`의 이미지는 사회에 정착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이 검이 본래 가지는 힘이라는 것이 발휘될 것 까지도 없이 , 사람들이 이 검이 진품이라고 믿기만 하면 사회에서는 그 기능을 한다는 것 입니다.

이것을 저는 「실재 없는 상징성象徵性」 이라고 말 합니다만 , `쿠사나기 츠루기` 의 상像이 실물과 떨어져서 혼자서 걸어다니기 시작했다고 표현한 것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