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도심사위원의 눈......후루타 유타카

간합(間合)의 공방을 중시하고 몸을 던지는 기술을 내고 있는가

검도는 서로 상대방의 움직임에 응해서 공방( 攻防 )하게 되는 대인적 격투기 입니다. 자신이 치고 싶다고 생각하는 만큼 상대방도 같은 생각이라는 것을 우선 인식해야 합니다.

같은 중부지역이라 오카야마의 이시하라 선생님께 가르침을 받고 있습니다만 선생님은 항상 ( 검도란 조화 調和 이다. ) 라고 말씀 하십니다. 한편으로는 대립이 라는 요소가 있습니다. 다시말해 서로간의  압박과 공격이고 이건 중요한 요소 입니다. 그러나 감동을 안겨주는 한칼 이란 자기 혼자서 만들어 낼수 있는 가 하면 그건 아닙니다. 예를 들면 상대방이 칼끝을 내리니까 머리치기가  유효타돌이 되고 손목을 올려 주니까 손목이 정해지는 것 입니다.

카라오케에서도 마이크를 놓지 않는 사람의 노래는 듣고싶지 않듯이 검도에서도 마찬가지 입니다. 때려 주자 , 보여주자, 너무나도 자기 본위 입니다. 상대방과의 관계에서 기술이 창조 되어 지는 법 입니다. 은사 이셨던 토끼마사 선생님께서는 자신에게 엄하시고 묵묵히 케이코에 전념 하셨습니다만 들어오는 쪽의 능력을 충분히 끌어낼수 있는 케이코 법 이었습니다.

결국 감동을 부르는 타돌이란 이러한 겸허한 자세를 지니는 것이 전제 되어져야 하지 않을까요. 그리고 그 사람이 어떠한 각오로 수련을 쌓아 왔는가가 중요 합니다. 아까도 말했듯이 검도는 두사람이 함께 창조해 가는 문화 입니다. 따라서 간합의 공방을 중요하게 여기고 기회를 보자 마자 과감히 몸을 던지는 기술을 낸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 志를 높게 가지지 않으면 실현 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지 志 ( 뜻 ) 이라는 것은 원래 부터 높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것은 일시적인 것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뜻을 조종한다고 쓰고 ( 지조 志操 ) 라 하고 그것을 죽을때 까지 변하지 않고 지니는 것을 ( 지절 志節 ) 이라 합니다. 실행은 어렵습니다만 그 길을 구해 가는 것이 최종적으로 인간형성의 길로 이어지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일상생활을 해나가기 위해서는 여러 면에서의 지식이 요구 되고 나아가 원만한 사회생활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적정한 판단, 즉각적인 식견이 필요하 지만 자칫 하면 생각에만 그치기 쉬워서 이 식견 ( 識 見 )이 자연히 행동에 나타나지 않으면 의미가 없는 것으로 어떤 저명한 선생님은 이것을 담식 ( 膽 識 ) 이라 말씀하셨습니다.

검도에도 ( 바른 선생님 곁에서 배운다 ) ( 궁리를 거듭한다 )  創造變化 해서  ( 케이코를 한다 ) 의 ( 三磨 의 位 ) 라는 가르침이 있습니다만 말하려고 하는 것은 같은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심사라는 것은 제각각 노력해 왔던 것을 객관적으로 평가하는 것 이라 생각합니다. 심사에 합격하기 위한 테크닉에만 마음을 빼앗기면 오히려 먼 길을 돌아 가야 할수도 있습니다. 승단 심사라는 것은 상대방의 가슴을 빌려서 서로 함께 높아지려는 것 이라는 것을 명심해 두고 하루하루의 케이코에 전력을 다해 주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