書法에서의 깨달음書法での悟り
훨씬 오래 전 경오년(1865~1868) 간의 일 입니다만 , 나는 오토와 산의 護國寺호국사에 참배를 하러 간 적이 있다. 본당의 한 구석에 족자가 걸려 있는 것을 우연히 발견했는데 그 글자 체는 俗속된 풍을 벗어나 筆勢필세에는 도道에 어긋나거나 사악함이 없이 실로 雲煙龍飛운연룡비라고 할 만해서 , 나는 탐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가까이 다가가 삼가 잘 살펴보니 , 놀랍게도 바로 成佛홍법대사의 친 필적이 아닌가.
대사의 筆意필의의 수려함은 입으로는 훌륭하게 표현하지 못했던 자신 이었지만 어떻게 해서든 친筆蹟필적을 손에 넣고 싶다는 마음이 낮이나 밤에도 사라지지 않고 있었다.
그 후의 나는 승려라고 하지도 않고 속인이라고 하지도 않고 , 이 길의 선배들에게 부탁하여 몇 종류의 친필적을 입수하고 , 틈을 내어서는 낮과 밤을 삼가 베껴쓰기를 수년 , 가까스로 , 호랑이의 생각으로 고양이를 쓰는 정도까지는 나아질 수 있었다. 호랑이가 犬개가 되어서는 큰 일 이었지만 , 다행히도 그 정도로 형편 없지는 않았던 셈이다. 그것이 메이지 5년인가 6년(1873)의 일이다.
그로 부터 공무를 보는 중에 틈이 나면 劍 . 禪 . 書의 것들을 하루도 게으르지 않았고 , 특히 여러분야의 사람들이 항상 나의 족자를 원해서 찾아오는 횟수가 백번천번인지도 모를 정도가 되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액면과 족자를 합해서 이백 장 아래가 된 날은 거의 없었다.
메이지 13년(1880) 3월 30일 나는 , 劍 과 禪의 두 길道에 있어서 깨달은 바가 있었다.
그리고 무엇에 있어서든 本質본질은 같은 것이다 라는 것을 알고 , 書글의 筆意필의도 변화 가 생겼다.
그러나 이 문제에 있어서의 진정한 呼吸이란 하는 것이 되면 , 그것은 나 혼자서 이해 했다고 하는 수 밖에 없고 , 말로 표현하는 것은 불가능 하다. 아마 이것을 설명 할 수 있는 사람도 세상에는 극히 드문 것이 아닐까
야마오카텟슈의 書서는 글로서 어느 유파에도 맞지 않는 것으로 , 書서 인지 畵그림 인지 분명하지 않다고 하는 세상의 평판이 있는 것 같다.
실로 그 말대로 이다. 뭐라고 반론의 여지도 없지만 , 류파가 이거냐 저거냐 라고 하지만 , 그 사람 자신의 거울鏡에 비치는 대로 해 두면 좋은 것이다.
그러한 이유로 지금의 현재의 글은 , 말하자면 텟슈류 라는 것이 된다.
올 해의 정월부터 이 달의 오늘까지 쓰고 나눈것이 액면과 족자를 합해서 총수 18만 1천 남짓이 된다. 옛날을 생각하면 마치 꿈속에서 꿈을 보고 있는 것 같아서 , 인간의 힘의 신비로움에 경탄하며 붓을 놓는다.
메이지 18년(1885) 12월 30일
야마오카 텟슈 타로 誌
'劍禪話검선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劍禪話검선화....(34) (0) | 2015.12.28 |
---|---|
劍禪話검선화....(33) (0) | 2015.12.24 |
劍禪話검선화....(31) (0) | 2015.12.22 |
劒禪話검선화.....(30) (0) | 2015.12.19 |
劍禪話검선화....(29) (0) | 2015.12.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