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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本剣道の歴史 일본검도의 역사

일본 검도의 역사...(26)

 

 

신류新流의 대두

 

중세로 부터 후기에 걸쳐서 "죽도대련 검도"가 성행하면서 , 이 기술에 뛰어난 유파가 새롭게 등장합니다.

"죽도대련 검술" 의 형태를 만든 `나가누마 시로 자에몬 쿠니사토` 의 지키신카게류直心影流 와 , 이것이 세상에 널리 알려지는 계기를 만들었던 `나카니시中西 파 잇토우류一刀流` 는 그 한 예 입니다.

`지키신 카게류直心影流`는 이미 말씀드린 바와 같이 , 카시마鹿島의 `마츠모토 비젠노 카미` 와 `카미이즈미 이세노 카미` 로 부터의 흐름을 이어받아 , `쿠니사토`의 아버지인 `야마다 헤이자에몬 미츠노리`를 초대初代로 해서 일으킨 유파 입니다. ‘지키신 카게류`는 `오다니 세이 이치로男谷精一郎` 와 `시마다 토라노 스케`島田虎之助 `사카키바라 켄키치榊原鍵吉` 라는 저명한 검객들을 배출합니다.

‘나카니시中西 파 잇토우류` 는 `오노파小野 파 잇토우류` 의 계통을 이어 , `나카니시 츄우타 타네사다中西忠太子定`를 초대初代로 합니다. 그의 아들이 `츄우죠 츠쿠다케忠蔵子武` 이고 , "죽도대련 케이코" 를 도입한 것을 계기로 급격하게 문하생들이 늘었다고 전해 집니다. 이 유파의 문하생에는 , `아사리 마타시치로浅利又七郎 ` 와 `시라이 토오루白井亨` 등이 있습니다.

`잇토우류一刀流` 계통에서는 , `치바 슈우사쿠千葉周作`가 일으킨 `호쿠신北辰 잇토우류` 가 유명 합니다. 이 외에는 `헨미 타시로 요시토시逸見太四郎義年` 의 `코우겐甲源 잇토우류` 와 `이바제 스이켄 히데아키伊庭是水軒秀明` 가 창시한 `신교우토우류心形刀流` `후쿠이 효우에몬 카헤이福井右衛門嘉平` 를 유조로 하는 `신토우 무넨류神道無念流`  , `모모노이 하치로우 자에몬 나가요시桃井八郎佐衛門直由` `쿄우신 메이치류鏡新明智流` 등을 들 수 있습니다. 또한 이색적인 것은 , 막부말에 `신센구미新選組` 의 대장이었던 `콘도 이사미近藤勇` 와 그의 부장이던 `히지카타 토시조土方歳三`를 배출한 `텐넨 리신류天然理心流` 등을 들 수 있습니다.

 

 

거리도장町道場의 등장

 

원래가 무예는 무사가 행하는 것 이었습니다만 , 에도시대도 후기가 되면 낭인이나 농촌 출신의 사람 등 반드시 무사가 아닌 이들도 이러한 새로운 유파의 중심의 하나로 왕성히 활동하게 됩니다.

이러한 사람들이 도장을 세우고 검술을 가르치게 됩니다. 공공의 교육기관 이었던 번교藩校와 달리 , 막부幕府나 번藩으로 부터 떨어진 곳에서 독자적으로 생계를 유지하던 민간의 도장 입니다. 이것을 「거리 도장 , 시가지의 도장」 등 으로 부르고 있었습니다만 , 근세 후기로부터 막부 말에 걸쳐서 , 에도에서는 특정한 도장이 크게 성행하게 됩니다. `호쿠신 잇토우류北辰一刀流` 치바 슈우사쿠千葉周作 의 현무관玄武館(겐부칸) , `신토우 무넨류神道無念流` 사이토 료구로斉藤弥九郎 의 연병관鍊兵館(렌빼이칸) , `쿄신 메이치류鏡新明智流` 모모노이 슌죠우桃井春蔵 의 사학관士學館(시가쿠칸) 이 , 「기술技의 치바 , 힘力의 시이토 , 위상位의 모모노이 」 등 으로 불리며 , 에도 삼대도장三大道場으로 등장해서 융성을 이루게 됩니다.